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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by OUO


첫눈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내려서 겨울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추워진 지 한참이 지난 후인데

따뜻한 곳에 자주 있어서일까

유난히 더 추위를 많이 탔습니다


훈기 다음에는 한기가 오는 것처럼

좋은 일 뒤에는 나쁜 일이 당연히 온다고

그래서 오늘 유독 추운 건 좋은 일이 많아서라고

생각하면서 익숙한 추위를 느꼈습니다


[추워?]라고 말하던 사람을 기억합니다

나는 언제나 [괜찮아.]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대답을 했더라면, 겉옷을 벗어주었을지도

뒤에서 앉아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대답을 했더라면, 같이 지내고 있겠죠.

시린 두 손을 놓지 말아야 했습니다.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로 널 보내지 말았어야 합니다.


사실은 많이 추웠습니다

각자의 온도만큼만 느끼고 싶었던 겨울은

고장 난 창문을 고치지 못해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냥 조금 아귀가 안 맞은 계절이었습니다


입김을 붑니다

지나간 가을도 떠오르지 않지만

유난히 어릴 때 겨울을 많이 추억합니다

그날 겨울은 확실히 덜 추웠습니다


손이 시려도 눈을 뭉치던 나를 기억합니다

시린 손을 잡아주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뭉친 눈을 던지던 아버지를 기억합니다

그날 만든 눈사람은 아직도 녹지 않았습니다


겨울에도 나의 생활은 똑같습니다

목이 마르면 음료 대신 물을 마시고

피곤할 때면 커피 대신 세수를 하고

많은 걸 살 순 없지만 살 순 있었습니다


그런 삶에 당신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껴안아보았자 우리는 꽁꽁 얼었을 거라며

들떠보고, 열이 나서 다시 따뜻해지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식어서 추위를 느꼈습니다.


눈이 쌓이면 발자국도 없어지겠죠

우리는 가장 처음 내린 눈을 잊어버릴 겁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내린 눈을 더럽힐 것입니다

그렇게 눈이 녹아내리기를 기다릴 겁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랑했던

사랑했었던

너가

점점 더 멀어지면서

기억 한 편으로 쌓여갑니다


추위가 있어서, 추위를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이 내리고 눈이 쌓이면

눈을 치우고 눈이 녹으면

그럼 겨울이 다 지나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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