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인 삶의 대가는?
주체적인 삶이라는 것이었다.

ver.2403 네 번째 이야기

by 마차

부모님이든, 교수님이든, 친구든, 지인이든, 세상이든

그 누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되었어. 인생의 굴곡이 큰 주인공이.

어쩌면 나는 운이 좋았는지도 몰라.

‘세상이 하라는 걸 해야 하나,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나..’

이것에 대해 꽤나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퍼스널 브랜딩.. 퇴사.. N잡.. 1인 기업..

온라인 창업.. 무자본 창업.. 스마트 스토어.. 등등이

그야말 대로 트렌드였거든.


그 강렬한 시대적인 트렌드 덕분에

나는 그러한 영역들에 관심을 가졌고,

살짝 입문해 보다가.. 마침내 흠뻑 빠져버렸지.

아주 만족스러운 삶이었어.

남들과 다른 일을 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내가 사장이 되어 누군가의 지시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나의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가치를 주며 돈을 버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대체될 수 없는 나로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한마디로,

주체적인 삶이지.


그러나, 자연의 이치는..

아주 공평하고 똑똑하잖아?


너무나 좋아 보였던 이 주체적인 삶이

마냥 행복하고, 평화로운 건 아니었어.

주체적인 삶의 대가는?

그야 말대로 주체적인 삶이라는 거였으니까.


남들과 다른 일을 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묘한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 삶이기도 해.


남들과 다른 일을 하기에,

나와 나의 일이 특별하게 느껴지지만

그 특별함을 조금 더 넘어버리면

때론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때론 내 일은 이상한 일이 된 것 같은 느낌이거든.


내가 사장이 되어 누군가의 지시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망나니가 되기 쉬운 삶이기도 해.

내가 사장이자 직원이면.. 군기는 누가 잡아..?

나를 대하고, 돌보고, 태도를 바로잡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의지와 카리스마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필요했어.

사장이 일은 안 하더라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볼 수 있는 지도는 항상 그려야 하니까.

직원에게 너 지금 좀 지쳤다고. 좀 쉬엄쉬엄해야겠다고.

이참에 휴가 다녀오라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사장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


나의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가치를 주며

돈을 버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뿐만 아니라 나도, 나의 능력을 매일같이 의심하면서

겨우 가치를 만들고, 겨우 그 가치를 누군가에게 주는..

그런 생각과 행동의 반복이었어.

그렇게 해서 받은 돈은, 적절한 뿌듯함과

또 적절한 죄책감으로 이루어져 있었지.


대체될 수 없는 나로 성장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고 이상하게도..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은 잘만 돌아가구나..’라는 것을

갈수록 깨닫게 되는 삶이었어.


사실 인간은, 죽지만 않으면 돼.

다소 극단적이지만.. 죽지 않을 만큼의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인간이든,

이 세상에 대해 그리 큰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거야.


어떻게 보면 나와 네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물건과 서비스들 전부..

없으면 안 되는 건, 없으면 죽게 되는 건 없을 거야.

이렇게나 잘 발달된 세계가, 갑자기 허허벌판으로 공허해지더라도

우린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죽지 않고 잘 살아갈 거야.


이걸 깨닫는 게.. 힘들기도 했어.

‘나 하나 없어져도..

세상은 어제와 같이 잘 돌아갈 텐데..

그럼 나 왜 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의문하나 제대로 풀지 못한 것처럼, 이 의문도 풀지 못했지만..

이 의문을 풀어가고 있긴 하구나 싶은 생각은,

‘누군가에게 대체될 수 없는 인간으로 남으려 하기보단,

나 자신에게 대체될 수 없는 인간으로 남자..’라는 생각이야.

이 말이.. 조금 이상하기도 하고,

단번에 이해되기 어렵기도 하지만 말이야.

내가 기획한 서비스,

내가 쓴 글,

내가 만든 상품을

그 누군가가 어느 시기에 소비했어도,

나와 관련되지 않은 다른 서비스로 충분히 대체 가능해.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면 되고,

다를 글을 읽으면 되고,

다른 상품을 쓰면 되니까.


내가 사라지면 누군가로 쉽게 대체되고 채워지는 이 세상이

잔인하다 생각되긴 하지만

나 또한 취향이 시시각각 변해서 쉽게 질려버리는

무심하고 잔인한 소비자들 중 한 명으로서..

그 잔인한 세상을 이루고 있는 한 명의 잔인한 사람으로서..

이 현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지.


이해할 수 있는 내가 잔인하게 느껴졌지만.

그걸 이해하게 된 시점부터

나의 행동과 생각은 조금씩 방향이 달라졌어.


누군가에게 대체될 수 없는 인간으로 남으려 하기보단,

나 자신에게 대체될 수 없는 인간으로 남으려 하는 방향으로 말이야.

누군가에게 더 예뻐 보이기 위한,

누군가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한,

누군가에게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한

생각과 행동을 덜어내고..

나에게 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나에게 더 옹골찬 알맹이를 선물해 주기 위한,

나에게 더 사랑과 평온, 그리고 여유를 주기 위한

생각과 행동을 채우기 시작했어.


그랬더니..

‘괜찮았을까? 잘 보였을까? 예쁘게 보였을까?

어땠을까? 실수는 안 했을까?’

하는 불안의 파도가 잠잠해지고,

‘오늘 꽤 괜찮은 하루였어.

오늘 밤 눈을 감고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없어도..

제법 괜찮은, 그리 후회가 남지 않은 삶을 산 것 같네.’라며..

오늘 나의 하루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나라는 사람이 말해 준 평탄한 평가를 들으며

그리 특별하지 않았던 하루를

세상의 마지막 하루만큼이나 특별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어.

.

.


주체적인 삶의 대가는 주체적인 삶이라는 거였고,

주체적이지 않은 삶의 대가는 주체적이지 않은 삶이라는 거였어.

그래서 나는.. 수많은 대가들 중,

내가 어떤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

조금 더 나에게 맞는 삶을 선택하는 방법이었지.

괴로운 것, 고통스러운 것은 그 어느 상황에나 붙어있는 거니까.

너는?

너는 어떤 괴로움을 선택했어?

네가 선택한 그 귀한 괴로움이 궁금하다.


매달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쓸 때,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써 내려가는 것 같아.

가족들에게 외면받는 괴로움,

사람들이 나를 찾아주지 않는다는 괴로움,

사랑의 속도와 방식이 다르다는 괴로움,

꿈꾸는 세계와 지금의 세계의 괴리감에서 오는 괴로움,

일상 속에서 우연히 겪게 된 상황에서의 괴로움 등등..


아무래도, 나 자신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한 것들을

글로 적어 내려가다 보니.. 묵혀왔던, 겪어왔던,

가지고 있던, 가지고 있을 괴로움들을

글로 해소하고 해결하게 되는 것 같아.

이렇다 보니.. 괴로움이 그리 괴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뭐랄까.. 괴로움이 느껴지면, 괴로움의 느낌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엇.. 유튜브 각인데?’하는 것처럼 ‘엇.. 글 각인데?’라고 생각하며..

괴로움을 인생의 필수적인 요소로 바라보게 되었어.

물론 마음이 여유롭지 않은 그 어느 때에는

그냥 이 괴로움에서 제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지만.


괴로움을 인생의 필수적인 요소로,

괴로움을 글의 팝콘 각 주제로 생각하다 보니

그야 말대로.. 삶이 재밌어지더라.

‘나는 오늘 이런 괴로움을 안고 있는데..

내일은 어떤 괴로움을 안고 있을까?’라면서..

아직 오지 않은 괴로움을 기대하기도 해.

‘괴로움을 기대하게 된다..’이 문장을 쓰는 나 자신에게

살짝 소름이 돋았지만 ㅋㅋㅋ


저번달에 겪은 나의 괴로움들을 써 내려간

그때의 기록들을 보고..

‘아.. 이런 괴로움이 있었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아... 이렇게 스트레스 받았었구나?

요즘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과거의 나를 꽤나 가소롭게

쳐다볼 수 있는 나를 발견했어.


과거의 괴로움을 가소롭게 쳐다볼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나에게 형용할 수없이 커다란 위로를.. 건네어 주더라.

그렇다면 지금의 괴로움도, 어느 시기엔 가소로워질 예정이라는 거잖아.

이것보다 더 혁명적인 생각이 있을까?

이 발견과 사실에 위로를 받은 난,

기꺼이 괴로움에게 설렘을 느끼기로 했지.

다행히 지나가버린 괴로움이든

지나가버린 줄 알았지만 남아있는 괴로움이든

선명하게 다가오는 괴로움이든

곧 오게 될 징조를 보이고 있는 괴로움이든

기꺼이 괴로움에게 설렘을 느끼기로 했어.

.

.


대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곧

괴로움을 느껴야 하는 거잖아.

수많은 삶들 중, 주체적인 삶을 택했다면,

주체적인 삶의 대가가 주체적인 삶이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그 괴로움을 온전히 받아들여야지.

괴로움에 괴로워하는 지금을,

그저 거대한 자연의 미세한 조각이 되어

온전히, 그리고 온순히 받아들여야지.

물론 나도, 너도

지금의 괴로움을 있는 힘껏 반겨주기란..

많이 어려운 일 일 거야.

그 괴로움들이 나의 삶에 노크했을 때,

문을 열어줘 버리면..

평생 나의 삶에 살게 될 것 같으니까.

그러나 우리,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잖아?


초등학생 때의 난,

그때의 괴로움을 안고 있었을 거야.

엄마와 아빠가 사이가 좋았으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집안 분위기를 보며..

짝사랑 남에게 예뻐 보이고 싶지만

다가가기엔 생각보다 통통한 내 몸매와 빵빵한 얼굴을 보며..

.

.


이 외에도,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린 수많은 괴로움들이

더 많이 있었을 거야.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괴로움을 느끼는 포인트가 완전히 달라졌어.

초등학생 때와 일치하는 게 거의 없을 정도로.

너도 그렇지 않아?

누군가의 생각과 괴로움을 예측한다는 건

언제나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우린 시기에 따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부족한 부분도,

상황도, 관계도 변하고 있잖아.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괴로움을 느끼는 포인트도 변하고 있었어.

변하는지도 모를 만큼 아주 자연스럽게.


다행히 괴로움들은 나의 삶에 노크했을 때,

기꺼이 문을 열어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삶에 있던 창문을 통해 소리 소문 없이 달아나 버렸어.


나아가.. 나와 네가

어느 경지에 오르게 된다면,

나의 삶의 문을 항상 열어둔 나머지

어떤 괴로움이 나의 삶에 노크하는지도 모른 채,

어떤 괴로움이 나의 삶에 잠시 동안 머무는지도 모른 채,

그래서 당연히 언제 그 괴로움이 나의 삶에서 사라진지도 모른 채..

그저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겠지.

나도 그 경지에 오르고 싶다..

아직 지금의 난,나의 삶을 두드리는 괴로움의 미세한 노크에도

파르르 긴장을 하는 작은 사람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그 경지에 오르고 싶다.


그 경지에게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난 지금 어떤 연습을 할 수 있을까?

일단, 지금 느끼는 괴로움을

가소롭게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미션이 클리어 되면..

나의 삶에게 그 어떤 괴로움이 찾아와도,

괴로움이 온 건지, 간 건지도 모르고,

그래서 느껴지지도 않는.. 그 공(空)의 상태로

아주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괴로움을 괴로워하고 있는 나와 너에게

작은 포옹이 되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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