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양송이 수프
올 한 해도 다사다난하게 보냈지만
내년을 한 달 정도 남긴 현시점에서 생각해 본다.
10년 후의 나는 2024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세상도 주변도 내 마음도 편히 뉠 곳 없이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던 초봄. 아니 늦겨울.
얄궂은 봄을 거쳐 더운 여름을 지나온 것은
내가 무언가를 특출나게 잘 해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잘했다 칭찬하고 싶은 것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 버텨냈다는 사실.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 적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척척 해내기란
척척박사도 힘들뿐더러
인간미 없어서 애진작에 포기한 상태였다.
그저 파도가 밀려오면 오는 대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나가는 대로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춤이라도 추듯 휘청이며 버텼다.
한곳에 오래 머물렀던 것도 아니다.
이 연재 글을 쓰는 중에도 여러 가지 일과 사람이 오고 갔다.
나 역시 누군가를 스치며 그 절망감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모든 과정에서 늘 함께 있어 주었던 존재를 소개하려 한다.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는 아니니 폭죽을 내려놓길.
'소울푸드'의 대명사인 닭고기 수프는
잭 캔필드와 마크 한센의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의 주 소재다.
초중고 12년 과정 중 권장 도서 목록으로도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지친 몸과 마음에
적당한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식으로 그려진다.
소울푸드 한 그릇 필요했던 나는
우선 개인적인 취향을 담아
닭고기가 아닌 양송이로 대체하기로 했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그럴듯한 주방까지 차려서 요리했다.
이 주방의 또 다른 이름은 카오스다.
냄비에는 불안감, 선반 위에는 불확실성,
그리고 양념은 불행과 고통이다.
커튼 없는 작은 방에서 시작된 내 일터는
점차 복작거리는 실험실로 변했다.
때로는 불안정함 속에서 안정을 찾고,
때로는 실패를 통해 성장의 기회를 포착했다.
프리랜서로 전향한 나는
마치 평생 같은 장르의 요리만 해왔던 요리사가
갑자기 퓨전 요리를 시도하는 느낌이었다.
모두에게 처음이 어렵듯 내게도 마찬가지였고
재료가 제대로 섞이지 않을 거란 두려움,
그 불안함만으로도 주방은 온통 엉망이 되곤 했다.
하지만 먹고살아야 하니 부딪혀 온 여정은
지속적인 자기 재발견,
혹은 레시피 발명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쓰고 맵고 때로는 짠맛의 양념들이 수프 레시피에 깊이를 더했다.
실패는 마치 잘못 털어낸 소금 한 꼬집 같았다.
맛을 망칠 것 같더니만
오히려 전체 풍미를 살리는 핵심이 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위로의 음식이 아니라
때로는 쓰고, 때로는 맵고, 때로는 알 수 없는 풍미를 지닌
복합적인 영양분이라 정리해 두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해도 되려나?"
불이 너무 강하거나 약할 때 중얼거리는
요리사가 1명인 주방의 메인 셰프의 불안한 중얼거림.
그러다 수십 번, 수백 번의 물을 올리고 불을 켜고
글을 쓰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먹을만한 양송이수프가 되었다.
내 양송이수프의 비밀 레시피는 간단하다.
불안감 2컵
도전 정신 1큰술
자기 연민 약간
유머 소스 듬뿍
이 모든 재료를 천천히,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섞어내면 된다.
완벽할 필요는 없어도 오직 나만의 레시피로 만들다 보면
내 입맛에 '딱' 맞진 않아도 썩 괜찮은 맛이 날 때가 있다.
그때야 양념으로 사용된 불행과 고통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되려 나만의 양송이수프를 만드는 특별한 재료들이자
나를 더 유능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왔던 고마운 조수들이다.
매번의 실패는 새로운 맛의 발견이고,
모든 고통은 레시피를 다듬는 과정이라고.
진정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수프는 계속해서 끓고 있다.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미지근하며,
언제나 나를 양육하는 근본적인 영양분.
불행과 고통이라는 재료들이 만들어내는,
오직 나만의 독특한 풍미.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여전하지 않고 또 다른 맛을 발견하리라 약속한다.
나는 준비되어 있다.
수프를 끓이듯,
나의 커리어와 삶을 계속해서 요리해 나갈
만반의 태세. 기세. 뭐 그런 것들.
그렇게 오늘도 내 마음의 양송이수프를 끓인다.
후추 한 꼬집, 웃음 한 스푼 곁들여서.
다음화
내 마음의 양송이스프 EP.2 카페인 수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