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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Jun 24. 2022

[3년차 스푼 라디오 DJ의 이야기] 좋은 목소리란?

목소리에 관하여

"자! 다들 따라 하세요. 단전에 힘을 주시고, 성대를 말아 올린다는 느낌으로 아~ 해보실까요?"

모든 것은 수요가 있으면 공급 또한 따르기 마련이다.


좋은 목소리를 갖고 싶다는 수요는 보이스 트레이닝이나 발성 연습하는 학원들의 공급을 야기시켰고,
목소리를 통한 직종들이 생기며 수입원이 되어 본업으로서 여기는 경우도 늘었다.


어느새 이 경쟁사회에서는 외모나 학력과 개인의 능력 이외에도 타고 난 '목소리'가 경쟁력인 상황이 되었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도 중저음과 편안한 톤의 목소리를 들으면 '오!' 하는 감탄사가 따라 나왔으며,

이상형에 관련된 질문에 '목소리 좋은 사람'에 대한 선망과 눈 반짝임이 점점 늘어가던 시기였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잠이 오지 않았던 어느 날 밤.
스푼 라디오라는 라디오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청취자로 방송을 들으며 즐겼다.

그러다 가끔씩 좋아하는 DJ가 방송이 없을 때면 친한 사람들과 놀기 위해 방송을 켰다.

어쩌다 모르는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들었다.

그게 DJ로서의 첫 시작이었고, 3년째 방송 진행을 이어오고 있다.


원래도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인 데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기에 청취자들과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나의 무기는 친근함과 꾸준함이라고 생각했다.


여느 날처럼 방송을 진행하던 어느 날, 청취자분께서 내게 말했다.

"제제님, 목소리가 참 좋으세요.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처음 듣는 칭찬에 기분이 좋았지만 내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주변의 다른 DJ들의 차분한 목소리를 부러워했고, 나는 '내 기준 좋은 목소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종종 듣는 칭찬에 감사를 전하면서도 '좋은 목소리는 어떤 목소리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나는 차분하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목소리의 톤을 좋은 목소리라고 생각해 왔다.

상대적으로 나는 활기 넘치는 목소리였기에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다고 느꼈던 것이다.


점차 나의 목소리를 듣고 '오!'라고 감탄사를 표현하시거나 칭찬을 전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좋은 목소리'의 기준은 그저 취향 차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취향은 차분한 목소리인 것처럼, 내 목소릴 좋아하시는 분들의 취향은 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타인의 귀에 좋게 들리는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로 했다.
이미 녹음되어 저장된 방송 캐스트 속의 내 목소리에 집중해보았다.




내 목소리를 오롯이 똑바로 듣고 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좋은 목소리'에 대한 기준이 다시 정립되었다.


좋은 목소리란.

스스로의 목소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

누군가의 성대모사나 모창으로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다 하더라도 100% 같은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다.

외모가 그러하듯이 목소리 또한 나만의 고유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나만의 것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 있었다.


수차례 수십 번을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면서 생각보다 내 목소리엔 마음에 드는 구석들을 발견했고,
나는 '내 기준 좋은 목소리'에 등극했다.


방송을 진행하다 보면 자신의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좋은 목소리를 갖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다면 기교나 발성에 의해 노래 실력에 대한 점수가 매겨졌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목소리를 전달하는 사람이기에 성적표가 필요치 않았다.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바라보았을 때 목소리 뿐만이 아니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사랑스러운 사람인 것이고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인 것과 같은 원리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외모나 조건들을 가졌다고 한들 자기 자신을 있는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는다면 어디에도 만족과 인정은 없다.

24시간 나를 돌봐주는 내가 인정하지 않는 나를 누구에게서 인정을 바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자기 객관화와 자아성찰은 자기애로부터 시작된다.

나를 들여다보고 가꿔주려는 마음이 기본 바탕이라는 것이다.


내 단점들과 좋아하지 않는 점들에 얼굴을 파묻고 거울 속 내게 눈을 흘길 것이 아니라

내 장점들과 좋아하는 점들에 고개를 들고 어떻게 가꿔나갈지 눈을 맞춰야 한다.




"당신은 중저음의 동굴 목소리가 아니기에 좋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누구도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


"나는 내 목소리의 좋은 구석을 알고 있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기에 좋은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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