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도심에서 가까운 산이나 국립공원에 속한 산은 초입부터 산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출발 지점에 친절한 안내 표지판도 세워져 있고 길도 넓게 조성돼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 까닭이다. 더불어 사람들의 잣은 왕래로 땅바닥이 시나브로 탄탄해져서, 누구나 편하게 발걸음을 내디딘다. 정상이든 중턱이든 간에 각자의 목적지를 향한 부푼 설렘, 산이 주는 넉넉함과 나뭇잎 같은 푸른 평온함을 기대하면서.
반면에 사람들 왕래가 그다지 없는 산은 진입로를 찾기도 쉽지 않거니와 운 좋게 진입을 하더라도 폭이 좁고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길섶에는 풀들이 웃자라 있어서, 정상적인 산길을 만나까지는 다소 애를 먹는다. 여기에 이방인을 배타하려는 개들로부터 무서움과 황망함을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산을 좋아하는 나는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마다 스마트폰 지도앱 등을 통해 인근에 가볼 만한 산을 찾는 편인데, 한 번은 전라남도 광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업무를 보기 전 시간을 활용해 등산 운동을 하기 위해 이른 새벽. 미리 검색해 본 무등산 아랫자락을 품고 있는 마을로 향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6월 하순의 새벽 5시 남짓한 시간이라 거리에는 언뜻언뜻 노년의 주민들만 눈에 띄었다. 해발 390m의 팔각정 전망대까지 왕복해서 운동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스마트폰에 표기된 산길 입구를 찾았다.
그런데 초입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나를 맞이하는 건 새벽 불청객을 향해 열렬히 짖어대는 개들이었다. 길을 찾았다 싶어 계단을 올라갔으나 10평 남짓한 밭이었다. 다시 평지로 내려와 갈팡질팡하던 끝에, 시멘트로 돼 있는 오르막길이 산으로 향하는 초입 길임을 알게 됐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오르막길엔 담벼락조차 없어 작은 마루와 방문이 그대로 노출된 집 몇 채를 지나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언덕길을 지나는데, 갑자기 거대한 개 한 마리가 나를 향해덩치만큼이나 사나운 목소리로 마구 짖어댔다. 기습 공격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지만, 뒷전에서 화살처럼 날아오는 개들의 아우성은 그칠 줄 몰랐다. 여기에 더해 나무로 우거진 전방에도 집들이 있는지 또 다른 개들의 목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랐다. 나는 “시끄러워 죽겠네. 개들이란….”하는 원망섞인 말을 내뱉으며 걸었다.
약 500미터쯤 지나고 나서야 그들의 함성은 잦아들었고, 비로소 ‘평화로운’ 산길을 마주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내려올 때 또 저들과 마주쳐야 하는데, 다른 길로 갈까?”하며 나름대로 하산 전략을 구상하기도 했다. 약 2km를 올라 팔각정 전망대에 다다르니, 도심이 한눈에 시원하게 펼쳐졌다. 팔각정 반대쪽으로 가서는 아슴하게 보이는 무등산 등자락을 구경하고는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길 중간쯤에 도착해서는,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 개들이 짖어대는 마을로 향했다.
걷다 보니 내 앞에는 일흔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할머니 3분이 나란히 걷고 계셨다. 나를 보고 길을 비켜주려 하셨는데, 길이 좁고 또 초입까지 얼마 남지 않은 터라 그냥 뒤에서 걸어갈 테니 천천히 가시라고 말씀드렸다. 이분들은 다른 방향에서 산에 올랐다가 내가 하산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친구분들이신지 옛날이야기도 도란도란 나누며 걷는 모습이 다정스러웠다,
조금 있으면 개들이 많이 짖을 텐데 하며 조바심을 안고 내려갈 때, 어김없이 몸짓 큰 개가 할머니들을 향해 사납게 짖어댔다. 그런데….
바로 내 앞의 할머니는 “미안해, 미안해~”하며 손 인사까지 하며 지나는 게 아닌가? 무작정 사람을 보고 짖는 개들을 원망했던 나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니. 오히려 개가 사람을 놀라게 했으니 미안해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할머니의 뜻은 “내가 너희 집 앞으로 지나가면서 심기를 건드리게 했으니 미안하다”는 마음이었던 것.
말을 할 줄 모르는 동물이라고, 그냥 자기 집만 지키기 위해 무조건 행인을 공격하는 단순한 동물이라고 마음속으로 하대했는데, 할머니는 나와는 정반대로 개의 입장에서 개의 마음을 읽고 사과를 한 것이다.
우리는 잘못을 해 놓고도 상대방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과 마음의 거리는 좁혀질 수 없거니와 본인에게도 항상 불편한 짐으로 남게 된다. 나중에는 이 작은 불씨가 타올라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이 잘못한 점이 있으면 서둘러 인정하고 사과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 사과의 기준을 자신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 서서 한다면 웬만한 앙금과 오해는 금세 녹아내린다는 걸, 개에게 사과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말해주었다.
동물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과를 하는 할머니의 마음은 산에 올라 내려다본 아름답고 넉넉한 도심의 경치, 나뭇잎 사이를 오가다 내 몸을 시원하게 씻어준 바람보다 훨씬 더 푸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