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환승한 것일 뿐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거라 확신한다.
작은애가 아픈 후로 가족 전체가 흔들렸다. 그중 엄마인 내가 가장 큰 타격감을 받았다. 일상이 일시 정지됐다. 2022년을 시작할 때 나의 포부 수준은 높았다. 대학원 졸업을 발판 삼아 사회생활에 발을 디뎠다. 계약직이었지만 적당한 자리였다. 처음 3개월은 본격적인 기술을 사용하기 전에 하는 짧은 달리기였다. 도움닫기를 마치고 이제 재생 버튼만 누르면 될 때 작은애가 암진단을 받았다. 작은애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날개 달린 말이 되어 하늘을 날았을지도 모른다.
MBTI 검사를 하면 계획형이 만점 가까이 나온다. 계획형인 데다가 포부 수준까지 높으니 나는 땅에 내려오지 않았을 거다.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는 마음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한국인 3명 중 1명이 죽기 전에 암을 경험한다지만 그게 내 자녀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계약서에 찍은 도장이 마르기나 했을까. 내 생애 첫 명함이 뻘쭘하게 됐다. 상자에 꽉꽉 담긴 명함을 받았을 때 묵직함은 내게 남달랐다. 이 명함을 다 돌릴 때까지 일하고 싶었다. 내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보니 뿌듯했고 책임감을 느꼈다.
퇴사하고 나서도 한동안 명함을 못 버렸다. 써먹지 못한 명함을 볼 때면 속상했고 미련도 남았다. 명함에 먼지가 쌓일수록 마음이 쓰렸다. 명함을 버려야지 결심하고서도 시간이 걸렸다. 빛도 못 본 명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까 봐 못 버렸다.
그러다 문뜩 오늘은 버릴 수 있을 거 같은 날이 찾아왔다. 다음에 또 보자고 명함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 후로 제법 오래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내 일상이 기약 없이 미뤄지는 기분이었다.
작은애의 치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부터는 내 앞날을 고민하는 것이 사치 같았다. 언제 작별할지 모르는 아이를 두고 내 앞날을 고민한다고? 지금은 치료에만 집중하자며 스스로 되뇌었다. 진로 고민을 뒤로 빼놨지만 그래도 씁쓸함은 바탕색처럼 남아 있었다.
최근 버스를 환승하는 경험이 내게 각별한 위안이 되었다. 저녁에 지인들과 만나고 막차버스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다가 눈앞에서 막차버스를 놓쳤다. 차선책으로 신복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복에서 내린 바로 다음에 내가 놓쳤던 막차버스가 왔다. 덕분에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었다.
운 좋게 막차버스를 탔다는 거 이상으로 울림이 있었다. 버스 환승이 지금의 내 인생 같았다. 인생을 환승하는 것일 뿐 제때 내가 내려야 할 곳에 내릴 거라는 확신이 샘솟았다. 이러다 내 때를 놓칠까 봐, 엉뚱한 곳에 내릴까 봐 걱정됐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이 환승인거지 내 인생이 어그러지지 않았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거라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승리할 고난을 겪고 있다는 비장함마저 감돈다.
작은애가 아프고 나서 남편에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우리가 입양하지 않았다면 00이는 어떻게 됐을까?" 어떤 분은 조심스럽게 입양이 후회되지 않냐고 묻는다. 나 역시 암진단을 받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아이가 아플걸 알고도 입양할 수 있었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어느 날 작은애가 아기였을 때 찍었던 동영상을 남편과 봤을 때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입양했을 거다.
작은애가 암진단을 받고 나서 시아버지께서 울먹이면서 하셨던 말씀이 좋았다. "00이가 우리 집에 오길 참 잘했다. 잘 왔다. 그치?" 정돈된 말로 설명되진 않지만 어쩌면 작은애의 전체 삶에서 입양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