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거 투성이지만 살아내야 한다.
작은애가 뇌종양인 것을 알고부터 보름 정도 아침마다 '이건 꿈일지도 몰라' 눈을 천천히 떴다. 악몽에서 깼다는 안도감을 바라며. 그러나 뒤통수의 한 뼘 수술 자국은 현실이라고 말해주었다. 소아암 환아의 보호자로 살아가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작은애가 아픈 것이 내 인생에 대한 경고일까 생각도 스쳐갔지만 그건 아닐 거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유를 찾으면 답도 없고 마음만 상한다. 고난의 이유는 나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목적은 있을까. 이 또한 지금은 알 수 없다. 모르는 거 투성이지만 살아내야 한다. 마음이 가난해졌다. 3초 만에 우는 시합에 나간다면 우승 예감이다.
불행 가운데 내가 만난 천사들이 참 많다. 하늘을 원망할 틈이 없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내가 가진 게 많다고 느낀다. 심지어 내 입에는 '고맙습니다' 인사가 붙었다. 부탁하고 신세 질 일이 많아져서 그렇다. 우리 집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연락이 닿고 자기 일처럼 고민해 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감동이다.
서울에서 6주간 방사선치료를 받기로 했다. 큰아이에게 엄마의 빈자리가 상처로 남을까 봐 걱정이 됐다. 예상대로 큰아이는 길길이 뛰었다. "엄마가 돌아와도 나는 엄마 아는 척도 안 할 거야." 큰아이는 엄마 없이 지내는 건 힘들다고 엉엉 울었다. 동생에게 "너 때문이야"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 머리카락 잘라서 동생한테 붙여 줄래.", "동생 빨리 고쳐야 하니까 엄마 갔다 와." 누그러질 때도 있었다. "울산에서도 방사선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왜 서울에 가려고 해? 엄마는 나랑 있는 게 싫어서 그래?" 묻기도 한다. 동생이 아픈 뒤로 큰아이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동생이 걱정되면서도 동생 때문에 화가 나나 보다. 우리야 부모니까 감내하고 작은애도 본인이 아파서 치료받는 거지만 큰아이는 입장이 다르다. "동생을 치료하는 것만큼이나 네가 너무 소중해."라고 여러 번 말해주고 있다.
일부러 큰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짜장면을 먹고 스티커사진을 찍고 레고를 만들고 편지지를 잔뜩 사고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했다. 서울에서 매일 편지 쓰기로 약속했다. 계획에 없던 폰을 급히 사줬다. 영상통화도 매일 하기로 했다. 남편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고 큰아이가 다니는 학원과 돌봄센터를 최대한 늘렸다.
작은애는 평일에 매일 10분씩 방사선치료를 받게 된다. 그 10분을 위해 가족이 떨어져 지내게 됐으니 큰 결정이었다. 치료에 있어서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도 가족 누구 하나 마음 다치지 않도록 살폈다. 작은애는 재우는 약을 안 쓰고 치료받기로 했다. 그럼 입원을 안 해도 되니까 병원에서 연계해 주는 소아암 쉼터에서 지낼 수 있다. 주말에는 큰아이를 만나기 위함이다.
작은애가 일곱 살이다. 나중에 자라서 이때 기억이 날까. 아팠던 기억은 부모한테만 남고 아이는 기억 안 났으면 좋겠다. 큰아이에게는 부디 이 시간이 구멍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글로 다 풀지 못하는 시시콜콜한 어려움들이 널렸다. 아이의 고통 앞에 무력해지고 하루살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감당할만한 시련만 주신다 했는데 아무래도 나를 과대평가하신 것 같다. 우리 가족이 잘 극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