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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경 Jan 13. 2022

생활의 향기

엄마의 뒷모습

 엄마를 모시고 요양원으로 가는 날, 비가 내렸다. 차창 위로 흘러내리는 빗물 때문에 눈이 아려왔다. 뒤에 앉아 계신 엄마는 조용했다.

 엄마는 지금 어떤 시간 속에 머물고 계실까. 당신의 이름도 잊어버리고, 가족도 못 알아보는 엄마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비를 맞고 서 있는 나무들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차를 몰았다. 25분을 가야 하는 거리가 일 분보다 짧게 느껴졌다.

요양원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차를 멈추고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아침에 엄마는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평소보다 얌전했다. 기저귀에만 오줌을 묻히고, 속옷은 젖지도 않았다. 밥도 잘 받아 드시고, 식사 후에는 바로 눕지 않고 앉아 계셨다. 그리고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셨다. 그 눈이 깊고 슬퍼 보였다.

그런 엄마를 나는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이제 정말 엄마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일까. 대소변을 못 가리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셔야겠다고 결정한 일이 정말 잘한 것일까.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요양원에 갈 시간이 다가와서 나는 엄마를 다시 목욕시켜 드리고 엄마 이름이 새겨진 새 옷으로 갈아입혀 드렸다. 아버지는 지금 가면 언제 보겠냐, 하시면서 침대 위에고 계셨다. 그러다가 엄마 곁으로 다가와 손 한 번만 잡자고 하셨다. 엄마 손을 잡은 아버지의 눈두덩은 벌겋게 부어 있었고 엄마의 얼굴은 무심했다. 65년 동안 부부싸움도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치매로 인해 두 살 아이보다 인지능력이 떨어진 엄마를 보는 아버지의 마음어떠까.

나는 애써 아버지의 얼굴을 외면하고 엄마와 떠날 채비를 했다.

 시동을 거는데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콧등이 시큰거리며 눈물이 났다. 나는 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속 페달  위에 발을 올렸다.

조금 가다 보니 신호등이 보였다. 나는 차를 멈추고 오른손을 뒤로 내밀었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힘을 주었다. 엄마 손이 따뜻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엄마 손잡아볼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에 알알한 통증이 밀려왔다.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엄마도 손에 힘을 더 주며 말씀하셨다.

"내 딸, 내 딸!"

울컥 눈물이 쏟아지면서 심장이 터질 듯 뛰면서 조여 왔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차를 움직였다.

 요양원에 도착했을 때 엄마를 담당할 요양보호사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요양보호사님은 인사를 나눈 후  바로 엄마를 휠체어에 앉히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나는 입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런 나를 보고 요양보호사님이 조금만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 말했다.

 "엄마,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엄마는 멍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셨다.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요양보호사님이 휠체어를 밀고 내 앞을 지나 요양원 안으들어엄마는 무심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눈물 속으로 아른거리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나는 멀지 않은 미래의 내 모습을 보았다.

차에 오르자 엄마가 두고 내린 햇살들이 차 안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눈이 너무 시리고 오열이 터져 나와 한동안 시동을 걸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가 남기고 간 흔적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엄마가 입으셨던 옷과 이불들을 빨고 구석구석 닦았다. 예리한 칼날로 저미는 듯 살갗이 아려왔다.

나는 그런 나를 달랬다. 엄마는 내가 모시는 것보다 요양원에서 케어를 잘할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24시간 보살핌을 받을 것이고, 자연스레 그 생활에 익숙해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일상에 젖어들고, 엄마를 가끔씩은 잊어버린 채 살게 될 것이다. 생살이 찢 듯한 쓰라린 이 마음도 무디어지게 될 것이다. 비 온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부신 햇살을 쏟아내고 있는 저 늘처럼.

그런 내 마음을 위로하듯, 햇살이 토닥토닥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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