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경 Feb 16. 2022

생활의 향기

이별 연습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다.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지만 잊고 지낸다. 자신에게는 절대 이별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하는 남녀가 처음 만났을 때 헤어짐을 전제로 만나지는 않는다. 그 사랑이 영원하리라 믿으며 혼신으로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급작스런 이별을 맞이했을 때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약한 젊은이들은, 생명을 버리는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빛 속에서 처음 눈 맞춤을 하는 순간부터 끊을 수 없는 사랑은 시작된다. 부모는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자식들에게 사랑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자식이 자라면서 이별이 시작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인정하는 순간 자식과의 연이 끊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다. 자식이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부모도 있다. 모든 것은 이별에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이별 연습이 필요하다. 언제 헤어져도 상처 입지 않도록 조금씩 이별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급작스런 이별이 와도 견뎌낼 힘이 생기게 된다. 이별 연습은 예방접종과 같다. 예방주사를 맞고 나면 질병이 침범해도 굳건하게 버틸 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요즘 이별연습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헤어질 것을 대비해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주사약이 너무 강해서 열이 오르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혹독한 이별의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다.

 포항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광양으로 이사를 오기로 했을 때, 나는 참으로 설레고 행복했다. 90세라고 믿기지 않으셨던 건강하신 아버지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고 걷지 못하지만, 아직은 날 알아보시는 어머니와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며 살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가슴이 벅찼다. 우리 집과 걸어서 오 분 거리에다 집을 한 채 사서 두 달 동안 리모델링을 하면서, 그 집에서 부모님이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부모님께서는 벚꽃이 눈부시게 꽃비가 되어 내리던 사월에 광양으로 이사를 오셨고, 날마다 부모님 집을 향해 가는 나의 발걸음엔 행복이 피어났다. 문을 열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시는 부모님의 모습 속에서 힘든 일상의 상념들을 남김없이 씻어버렸다. 대야가 넘치도록 엄마가 밤새 벗어놓은 옷을 빨면서, 아직 기저귀를 차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여겼다. 아침마다 엄마를 목욕시켜드리면서 엄마와 좀 더 교감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난 부모님과 함께하는 그 기쁨이 영원히 내 몫인 줄 알았다. 날마다 잠들기 전 부모님께서 이곳에서 10년 이상만 행복하게 사시기를 기도하면서 그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예측불허임을 나는 다시 한번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도 우리 인간의 의지와 능력의 범위 안에서는 결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이별 연습을 해야 하고, 연습이 거듭될수록 이별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작년 가을에 아버지께서는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깎아 베란다로 널러 나가셨다가 넘어지셨고 척추 하나가 부러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고관절이나 다른 곳에 이상이 없어서 한 달 정도 입원을 하고 세 달만 지나면 뼈가 아물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의사의 그 말을 믿었고, 아버지께서도 걱정하지 말라시며 나를 위로하셨다. 폐렴이 와서 위험한 고비도 있었지만 패혈증 같은 합병증도 오지 않고 염증이 잦아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버지의 회복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간병인 병실에 입원해 계시는 아버지께 반찬을 만들어 드리면서 내 희망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까지 아버지께서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우울증에 치매까지 겹쳐오면서 병상에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계신다. 나는 아버지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어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올 설은 우리 가족에게 참으로 우울한 명절이 되어버렸다. 나는 장에도 가지 않았고, 차례도 지내지 않았다. 조카와 아이들이 와서 밖으로 나가 밥을 먹고, 명절 음식을 사 와서 간단하게 먹었다. 설날 아침에는 떡국을 끓여서 아이들과 함께 먹었지만 맛이 없었다. 입맛마저 나를 떠나버렸다.

 엄마의 증세도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엄마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은 엄마의 병세를 악화시키면서 날마다 함께 지내고 잠을 자는 나까지도 알아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날마다 기력이 약해지는 아버지는 병원에 갈 때마다 짜증을 내신다. 난 점점 기운이 빠지고, 간신히 잡고 있던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고 또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평생 고생만 하신 아버지와 엄마를 좀 더 편안하게 모시고 싶은데 신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인가.

 얼마 전에 10년을 넘게 키운 고양이가 갑자기 숨이 멎어버린 일이 있다. 목욕을 시키고 얼마 후에 찾아보니 자는 듯 누워 있었는데 온 몸이 뻣뻣해져 있었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혀 준비 안 된 갑작스러운 이별은 몇 달 동안 날 고통과 슬픔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함께 지내던 부모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신다면 그 슬픔은 극에 달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두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요즘 조금씩 이별 연습을 하려 한다. 이별 연습이라는 말만으로도 고통이 밀려오지만,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부모님과 마음속에서 헤어지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다 보면 슬픔이 조금은 옅어질 것이라 믿으면서.

 입춘이 지난 지도 한참이 되었고, 매화는 피어서 향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눈부신 봄이 가슴 언저리까지 와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향기를 가슴에 품은 채 희망찬 봄을 꿈꾸고 있다. 매서운 겨울의 칼바람을 이겨내고, 따사로운 봄 햇살을 가슴에 넘치도록 껴안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나도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별연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결코 그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율배반적인 마음과 손을 잡고 있다.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매화꽃송이를 보면서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병상에서 일어나 눈부신 봄을 맞이하시기를. 섬진강을 뒤덮는 매화꽃잎들을 바라보며 그 꽃잎보다 더 환하게 웃으시기를.

이전 13화 생활의 향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