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 있을 때 22층에 살았다. 그린색 유리 탁자가 놓인 베란다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포항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새벽이 오도록 꺼지지 않던 포항제철의 용광로 불빛 그리고 포항시가지.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불나방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휘황찬란한 그 불빛을 향해 뛰어들면 온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지상으로부터 67미터가 되는 우리 집 베란다에 서서 나는 문득문득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날개를 휘저으면 불빛 위로 살포시 내려앉을 것만 같아 가슴을 설레면서. 그래서 나는 가끔씩 밤에도 잠자지 않고 깨어나 베란다 창문에 얼굴을 대고 바깥세상을 그리워하곤 했다.
난 내가 박제된 채 상자 안에 갇혀 있는 한 마리 나비 같다는 생각을 늘 했다. 비록 박제가 되어 생명을 저당 잡히고 말았지만 언젠가는 그 생명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무수한 바깥세상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바라보며 돌진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할 때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나를 억눌렀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 불빛들 속으로 뛰어들어 한 마리 불나방이 되어 활활 타고 싶다는 욕망을 잠재우곤 했다.
사람들은 우리 집을 지곡 스카이라운지라 불렀다. 그곳에서 2년 반을 살면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즐겼다. 커피를 끓이고 빵을 굽고 베란다에 나가 커피 향내를 들이켰다. 그 순간만은 내가 박제된 상자 속에서 깨어나 생명을 얻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가족들이 학교로 회사로 가고 나면 황금 같은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은 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창문을 열어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켜고, 청소를 하고, 음악을 틀어 놓고 그리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린다. 이른 새벽에 구워둔 빵을 박꽃 같이 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접시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커피를 탄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게 분위기에 취해 마시는 커피 향내는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 충분했다.
형산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구수한 빵 한 조각으로 시간에 젖어들고 있으면 나를 옭아매었던 현실의 고통들도 저만치 도망가고 없었다.
봄에는 눈처럼 휘날리는 벚꽃송이들이 눈앞에서 춤을 추고, 여름엔 여자의 가녀린 허리 같은 수양버들 가지 위에서 우는 매미 소리를 들었다. 오후쯤 되면 학교 갔다 돌아오는 코흘리개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볼 수 있었고 시장을 오가는 이웃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복도 훔쳐볼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 가슴을 사로잡은 것은 동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내 고향 언덕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삶이 행복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현재는 언제나 슬프고 지나간 것은 모두가 그리워진다고 한 말이 정말 맞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런 고향을 떠나 낯설고 물 설은 남도로 이사를 온 지 어느새 20년이 다 되어간다.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이질감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이 땅에서 이젠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 뿌리가 흔들리고 곪는다 해도 내린 뿌리를 절대 거둬서도 안 된다는 것도 안다. 결코 다시 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매여 헤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내 삶만 더 피폐해질 뿐이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기보다는 나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아파트 3층인데 조용한 동네다. 원고를 쓰다 오른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베란다 유리창을 반쯤 가린 커다란 느티나무가 수줍은 미소를 보내고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쭈뼛쭈뼛 고개를 내밀고 있는 푸른 하늘은 마치 숲 속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형산강이 포항 내 고향의 젖줄이었다면 섬진강은 남도의 젖줄이다. 10년이 넘도록 숨 가쁘게 쫓아다녔던 일과도 결별을 하고 이곳으로 올 때는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이 생활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지곡 스카이라운지는 아니지만 내 정원만 같은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또 다른 꿈을 피워 올리는 것이다.
가슴이 답답할 때 달려 나가면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안아주었던 형산강처럼 섬진강도 여정에 지친 나를 따뜻하게 껴안아 준다. 그 섬진강이 있기에 난 새로운 생명수를 얻을 수가 있었고, 든든한 뿌리까지 내릴 용기가 생긴 것이다.
사람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한 때는 돌아보고 싶지도 않았던 이 섬진강 기슭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가 있으니. 목젖이 보이도록 웃을 일이 없어도 잔잔한 미소는 날마다 피워 올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20년쯤 뒤 이 섬진강 기슭 위에서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서 있게 될까. 더도 덜도 말고 지금 이 넉넉한 마음을 그때도 변함없이 가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