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그래서 그리운
지금은 새벽 4시, 잠에서 깬 지 1시간이 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며 양을 헤아린다. 하지만 도망간 잠은 돌아오지 않는다. 갖가지 상념들이 무겁게 억누르는 눈꺼풀을 기어이 밀어 올리고 만다. 몇 번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잠자기를 포기한다.
그녀가 생각난다. 이사하던 날, 밤새 달인 호박 식혜를 병에 담아 들고 올라와서 내게 건네주던, 소녀처럼 여리고 순수한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언니, 이것 마셔요. 기운 내시고, 이사 가셔도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저도 잊지 마시고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차마 다 못 잇고, 계단을 내려가던 그녀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당진으로 이사 온 지 세 달이 지났지만, 이사 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주위 환경이 바뀌긴 했지만,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이사 오기 전 7개월이 넘도록 주말마다 서울로 오르내리며 지냈고, 그 생활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이사를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지금도 버스를 타고 눈을 뜨면 광양에 도착해 있을 것 같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고 내리면 그녀의 집 불빛이 보일 것 같다. 3층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면, 우리 집 거실이 날 맞아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광양에 다시 갈 수가 없다. 그 사실이 쓸쓸하게 다가온다.
작년 같았으면 나는 아이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멍하니 시간만 죽이고 있다.
이사 오면서 7 년 동안 했던 방과 후 강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아쉬운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쉰다는 것이 좋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내가 무용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당진은 남편 외에 아는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없다. 그런 이곳이 너무 두렵고 낯설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나에게 이곳에서 다시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기대할 수가 없다. 더구나 요즘은 코로나 시대라서 아는 사람조차도 만날 수 없는 상황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그녀가 생각난다. 언제라도 계단을 내려가면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그녀를 이제는 만날 수가 없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너무 큰 일을 겪고, 세상을 등진 것처럼 집안에만 있던 나를 기어이 불러내어 걷게 만들고, 숨 쉬게 해 준 그녀를 떠나왔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눈두덩이 뜨끈해지면서 심장이 아려온다. 나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결국은 일어나고 만다. 거실로 나가 창밖을 바라본다. 밤중에도 대낮처럼 환한 공장지대 곁의 삭막한 풍경들이 쓸쓸하다. 광양의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광양에서는 창문을 열면 느티나무가 먼저 반겨주었다. 거리도 조용하고, 고향 같은 포근함으로 늘 피로에 절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런 광양에서 20년 동안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지만, 그녀는 대가 없이 내게 아낌없는 사랑을 준 사람이다.
그녀는 지금껏 내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순수하다. 속세에 살다 막 나온 자연 그대로의 사람이다. 두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고,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현모양처이다. 또한 이웃과 나누기를 좋아한다. 그녀는 김밥을 싸면 늘 스무 줄 이상을 싼다. 집집마다 나눠주면서, 소녀처럼 순수하고 해맑은 미소를 덤으로 얹어준다. 햇살 같은 눈부신 마음을 내려놓고 간다.
나는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육개장도 잘 끓이고, 손이 많이 가는 잡채도 잘하고, 얼갈이 물김치도 잘 담그고 식혜도 자주 한다. 그것을 들고 일 층에서 3층까지 올라와 벨을 누르는 그녀를 볼 때면, 하늘나라에 사는 천사가 문 앞에 서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때가 많다. 당황해서 잘 먹겠다는 말밖에 못 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어린아이 같은 수줍은 몸짓으로 미소 지으며 그녀는 계단을 내려가곤 했다. 그런 그녀를 볼 때마다, 내가 무슨 복을 타고나 저런 귀한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 그녀로 인해 나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세상이 아무리 험난하고 폭풍이 몰아쳐도 때 묻지 않은 사람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밖에 나가지 못하는 2년 가까이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함께 해안도로를 걷고, 쑥을 캐고, 죽순을 따면서 내가 모르는 그녀의 세상 속으로 조금씩 스며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그녀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항상 남을 배려하고 상대방을 우선시했다. 그녀는 자신의 꿈보다는, 오로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사랑을 듬뿍 받은 두 아들은 딸처럼 살가운 자식들로 자라났다. 나도 그녀처럼 살고 싶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렸다. 결코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에도 마음을 끊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맑아졌다.
지금 후회되는 것은 그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코로나 때문이라는 이유로 늘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가 예정에도 없었던 이사까지 해버린 것이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늘 예측불허라 했다. 작년 봄까지만 해도 나는 이사할 것이라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고향보다 더 오래 산 광양을 떠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나는 당진으로 이사 오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내가 이사할 것이라고 했더니 그녀는 힘이 빠지고, 가슴 한쪽이 텅 빈 것 같다고 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계단만 내려가면 언제라도 볼 수 있는 그녀를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이사 오고 나서도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하면서, 그녀와의 거리를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만날 수 없다는 상실감이 순간순간 심장을 후려치면서 눈물이 날 때가 많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