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우임 Mar 30. 2022

거울 속의 나

나도 거울을 본다

 나는 옷 입는 센스가 꽝이다. 

몇 해 전, 외출했다가 들어오는데 딸아이가 “엄마는 거울도 안 봐요, 옷이 그게 뭐예요?” 결혼 전에는 친정엄마에게서 수없이 듣던 잔소리를 이젠 세대를 뛰어넘어 내 자식에게서 듣게 되다니 유구무언이다.      

 나도 거울을 본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욕실에 가서 양치질하고 샤워하면서 본다. 얼굴에 화장할 때 보고, 옷 입을 때 본다. 현관에서 신발 신으면서 보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거울 속의 나를 훔쳐본다. 길거리 걸으면서 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곁눈질한다. 화장실에서 손 씻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보게 된다. 집으로 귀가해서 오전과 별반 차이 없이 거울과 대면한다. 나는 이렇게 매일 수십 번 거울과 상봉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패션 감각 부족을 어찌하겠는가.      

 갑자기 재미난 발상이 스친다. 

이 세상에 거울이라는 게 없다면 어떨까? 불편하다는 뻔한 대답은 무시하고 우선 본인의 얼굴을 알 수가 없다. 눈이 얼굴에 부착되어 있어서 나의 얼굴을 볼 재간이 없다. 김태희가 신봉선을 마주 대한다고 가정해 보자. 김태희는 본인이 신봉선과 비슷한 얼굴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신봉선은 역으로 생각할 것이다. (특정인의 비하적인 발언이 아니며, 나는 신봉선의 입담을 좋아하는 1인이다.) 김태희로 살아가지 못하는 대부분의 여성에게 희소식처럼 들린다. 뷰티산업과 성형외과는 폐업할 거 같다. 외모지상주의라는 단어는 소멸한다. 아차, 사진이라는 복병이 남았구나. 그러나 이것 또한 큰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거울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인지할 수 있을 때, 사진이 갖는 의미가 크다. 해마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찍는 다이어트 산업도 시들해진다. 이쯤 되면 화장품 회사와 성형외과 의사들은 길거리에서 손거울이라도 사은품으로 뿌려야 한다. 다이어트 회사들은 거리에 대형 거울을 붙여야 할 판이다.     

 서광이 비취듯 무언가에서 해방되는 기분이다.

늘어가는 얼굴 주름에 신경 쓰지 않고, 저녁마다 팩을 안 해도 된다. 값비싼 성형의 견적도 무시할 수 있다. 새치머리 염색 안 해도 되고, 화장을 했다가 지우는 수고스러움을 덜 수 있다. 유행 따라 옷과 액세서리가 필요치 않다. 체중계의 수치를 덮어두고 맘껏 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어설픈 상상력은 이쯤에서 마침표를 찍겠다. 거울은 인간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편리함을 넘어서 일체가 되어 버렸다. 거울이 없다는 건 상상불가다. 철학적인 멘트로 외모보다는 내면을 보라고 하는데, 내면을 볼 수 있는 거울은 병원에서 하는 내시경뿐이다.     

 “참 인상이 좋아요” 첫 만남에서 인사로 주고받는 말이다. 

사람의 성품이 얼굴에 드러난다고 한다. 이 또한 옛말이다. 성형수술로 딴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 사람 어때? 어떤 이미지야?” 알고 지낸 시간의 누적에 따라 우린 인상보다는 이미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인상에서는 간혹 헛다리 짚는 과오를 범하지만, 이미지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린 인상에만 공을 들이고 이미지 관리에는 소홀해 왔다.     

 내 행동에 책임감을 진다고들 말한다. 

그럼 나의 이미지에도 책임감이 따를까? 무거운 중압감이 밀러 온다. cctv 한 대가 나의 머리 위에 매달러 나를 감시할지도 모른다. 내면을 갈고닦고 예쁘게 메이크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울은 없을까? 세상이 달라져서 남의 눈 의식 안 하는 사람들도 많다지만, 그래도 인간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기에 남을 의식한다. 거울을 상대적으로 적게 보는 나도 집 밖을 나가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다. 친정엄마의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여자와 집은 평생 가꿔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게으르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보다는 생활습관의 부지런과 게으름으로 구분하셨다. 반박할 여지가 없도록 만드셨다.     

 나도 거울 보는 시간을 늘려봤다. 

잘 보이고 싶은 대상이 생겼다. 바로 나 자신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나의 이미지를 가꾸고 싶다. 나의 이미지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다. 카톡의 프로필에 멋진 풍경 대신에 나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올렸다. ‘나야 나야 나’ 하는 노랫말이 흘러나오는듯하다.      

 현관을 나서기 전에 전신 거울을 봤다. 오늘도 나의 이미지에 책임을 지자면서 거울 속의 나에게 윙크를 날려본다.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 카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