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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Apr 07. 2023

본디아,   동티모르 1

시간을 거슬러 유년시절의 나 자신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낯선 땅, 이곳 동티에 온 지 한 달여가 넘어간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나라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를 맞이하는 건 강렬한 태양이었다. 덩그러니 활주로에 내려 공항 청사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은 건물까지 걸어왔다. 낙후된 나라다고 말로만 듣다가 실제로 와서 보니 동티는 한국의 60년대였다. 흑백 영화를 시청하듯 시간을 되돌려 나는 ‘응답하라 1960’의 세트장에 와 있는 거 같다. 오랜 고민 끝에 스스로 결정해서 온 길이기에 나는 앞으로 동티라는 나라와 친해져야 한다. 그것이 나의 올해 숙제다. 

    

 숙소에 짐을 풀고 첫날밤을 보내려는데 정전이 되었다. 전기가 부족한 나라이므로 흔한 일이란다. 비까지 내리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새벽에 닭의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어릴 적 시골 외갓집에서 듣던 수탉의 소리와 흡사했다. 옆집에서 돼지를 키운다더니 돼지의 꿀꿀 소리가 엄청 커서 잠을 설쳤다. 나는 이렇게 이방인으로서 동티에 신고식을 한 셈이다.

     

 근무하게 될 한국어 학교를 방문하여 간단히 인수인계를 받고 바로 담 날부터 수업을 했다. 오래전 한국인들이 사우디 같은 중동국가에 가서 달러를 벌어 오듯이, 동티 사람들은 한국에 가서 일하는 것이 소원이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어 공부에 관심이 많고 경쟁도 치열하다. 이 나라 평균 임금이 월 115불이며, 이마저도 일자리가 없다. 한국 가서 몇 해 일을 하고 돌아오면 본국에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결혼도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년 한국으로 가고자 하는 지원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어 학교 외에도 사설 한국어 학원이 수도인 딜리 시내에 꽤 많이 있다. 한국의 취준생들이 신림동 고시촌으로 몰리듯, 동티의 젊은이들도 한국행이라는 꿈을 안고 딜리에 모인다.      


 딜리의 3월은 우기에서 건기로 넘어가는 시기다. 지금도 더운데 앞으로 더 더워질 거란다. 소나기처럼 내리는 비가 여북 반가울 수 없다. 시원하게 내린 비로 인해 찜질방같이 데워진 건물과 도로는 열기를 식히고, 나도 숨통을 돌렸다. 비 오는 날씨를 부담스러워했던 내가 이제는 비를 기다리고 있다.    

 

 동티는 제조업 공장이 없어서 모든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한다. 항구에 배가 들어오면 마트에 물건이 빼곡히 진열되고, 배가 안 오는 날이 길어지면 상품 구하기가 어렵다. “눈에 띄면 바로 집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곳에서는 열대과일 빼고는 모두 귀하다. 귀한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다.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바나나는 저렴하면서도 맛이 상당히 좋다. 한국에서 먹던 맛과 조금 다르다. 먼저 약 냄새가 나지 않으며, 껍질 벗긴 바나나 맛은 새콤하고, 바나나 튀김은 별미다. 길거리 가판대 가계에서 과일을 사면 덤으로 더 주는 맛이 있다. 이 맛에 이끌리어 자주 찾게 된다.      


 차가 다니는 큰 도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길이 비포장이다. 매연은 없지만 흙먼지로 인해 운동화가 어느새 거무칙칙하다. 길에서는 흔히 소와 염소를 볼 수 있으며 큼직한 소똥이 사방에 깔렸다. 넓은 초원 위에서 방목하는 소를 상상하면 오산이다. 여기의 소들은 길거리를 활보하면서 쓰레기 소각장을 기웃거린다. 어느 집 앞 골목에서 꼬마 아이들이 벌거벗은 채 목욕을 한다. 낯선 외국인의 출연에도 거부감 없이 해맑게 웃는다. 부끄럼도 없이 알몸으로 동네를 뛰어다닌다.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부끄럽다를 인지한다는 것은 세상에 찌든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증거라 했다.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이를 활짝 드러내고 웃는 동티의 아이들이 마치 동티모르라는 나라로 오버랩이 된다.    

  

 시간을 거슬러 유년시절의 나 자신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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