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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Apr 23. 2023

돼지가 아니고 하마야, 동티모르 2

이래서 신은 공평하다고 하는 걸까

 나의 반에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정규입학 시즌이 아닌 추가로 받은 셈이다. 간단하게 오리엔테이션을 하루에 걸쳐 진행한 뒤 바로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의 나잇대는 20대에서 30대 초반이다. 한국어를 읽거나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자음과 모음부터 익혀야 하는 유치원 병아리반 같은 학생들이다. 우리네야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익혔기 때문에  어려움을 못 느끼지만, 외국인이 한글을 배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알파벳도 아닌,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문자가 아닌가.  

   

 그림 사진을 보여주며 자음, 모음 결합시켜 소리를 내는 연습을 할 때였다. “하마”라고 읽고 나서는 다 같이 이구동성으로 “바비” 한다. 바비는 돼지를 뜻한다. 나는 폭소를 터트리며 “돼지 아니에요. 하마예요.” 이곳의 사람들은 하마를 본 적이 없다. 생김새가 돼지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지 당당하게 돼지라고 외치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다음 그림은 호두였다. 학생들이 이번에는 “코코넛”이라고 한다. 난 또다시 배꼽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호두가 코코넛이랑 닮기는 했다.  

   

 동티모르에는 없는 것이 많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수업에서 부연 설명이 필요할 시에 난감한 적이 간혹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대부분 본 적도 없고, 타 본 사람이 없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계단이라고 간략히 설명해 줄 뿐이다. 최근에 오픈한 중국 메이마트에 아주 작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었다. 학생들을 데리고 체험학습을 가야 하나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동티모르에는 우체국이 없다. 소방서도 없다. 

“불이 나면 어떡해요?” - “알아서 꺼야죠.” 선임 선생님의 쿨한 답변이다. 복사용지를 사기 위해 몇 군데 가계를 돌았는데도 없었다. 가까스로 어느 상점에서 발견했다. 한 박스를 달라고 했더니, 물건이 부족한지 한 묶음만 판매 가능하다고 했다. 동티에서는 “왜”라는 의문사가 통하지 않는다. 왜 없을까요, 왜 팔지 않나요 등등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삶이 고달파진다. 그냥 순응하는 쪽이 정신건강에 좋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 듯이, 환경에 맞춰 살게 되어있다.    

 

 선생님들과 주말에 가까운 해변을 다녀왔다. 하늘은 맑고 바닷물은 깨끗했다. 한국은 요즘 황사와 미세먼지로 외출이 성가시다. 이래서 신은 공평하다고 하는 걸까? 야자수 나무 그늘 아래서 돗자리 깔고 편하게 쉼을 가졌다. 인프라가 없어 마냥 불편하다고만 느꼈던 이곳의 매력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언젠가는 동티모르도 변화 속에서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깨끗한 하늘, 공기는 그냥 이대로 있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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