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오랜만에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습니다.
나는 더 오랜만에 스스로 밥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떠나기 전, 쌀을 씻어 냉장고에 넣어두었기에 나는 그 쌀을 꺼내어 어릴 적 어머니께 배운 대로, 물 높이를 손등에 맞추고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을 눌렀습니다.
“백미, 쿠쿠가 맛있는 취사를 시작합니다.”
15분쯤 지나자 “뜸 들이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25분쯤 후엔 “증기 배출이 시작됩니다.”
칙— 소리와 함께 증기가 나왔습니다.
드디어 30분 후,
“쿠쿠가 맛있는 백미 밥을 완성했습니다. 밥을 잘 저어주세요.” 최종 멘트가 나왔습니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밥솥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밥이 아니라 죽이 되어 있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쌀은 적은데 어른 손등 높이로 물을 맞췄던 것.
이미 충분히 불려진 쌀이었는데 그걸 생각지 않고 물을 많이 넣은 것.
어릴 적 어머니에게 배운 방법을 그대로 적용했지만 상황은 달랐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밥, 아니 죽을 통해 인생을 배웠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상황에 맞게, 융통성 있게 살아야 한다. “
중국 고사성어 가운데 미생지신(尾生之信)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옛날 노나라에 미생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융통성 없이 약속을 맹목적으로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약속 시간에 맞춰 그는 다리 밑으로 나갔지만, 여인은 사정이 있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날따라 비가 많이 내렸고, 개울물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미생은 약속 장소를 끝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물에 잠겨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태도는 아름답지만,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는 고집은 때로 생명까지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신의 방식만 고수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타인의 시선에 귀 기울이고, 시대의 흐름을 헤아리며, 그날의 조건에 맞게 스스로를 조율하고 있는가?
융통성은 단순히 처세가 아니라, 삶을 부드럽게 만드는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