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어느덧 60대.
가정과 직장에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문득 대학 입학 후부터 써온 일기장을 꺼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매일 쓴 것도 아닌, 1달에 1~2번 정도 써온 기록들. 일기라기보다 ‘월기’에 가까운 글이지만, 40년을 넘게 써온 일기장이 7권이나 되었습니다.
일기장을 넘기다 보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삶의 장면들이 조용히 되살아납니다.
1학년 때 향토사단에 입영했던 기억, 2학년 때 28사단 전방부대에 입소하여 현역병과 함께 GOP 경계 근무를 섰던 흔적, 젊음의 한복판에서 쌓은 고민과 열정, 책을 읽고 느낀 내용을 낙서처럼 끄적이던 순간들, 군 복무 중 겪은 희로애락, 아버님의 심장병과 어머님의 골다공증, 첫 직장과 현 직장의 입사 과정, 직장생활 중 경험한 수많은 고생과 보람, 결혼 후 제주, 서울, 전주 등 10여 차례 이사하며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 그리고 단독주택을 지어 살아가는 지금의 내 모습까지. 참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 수많은 기록 중, 1991년 2월 27일의 일기 제목은 ‘종구라기’였습니다. 내 어릴 적 별명이었습니다. 당시 어머님은 매우 강한 분이셨고,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을 수족처럼 도맡아 하던 아이였습니다. 친척 할머니, 외숙 모, 어머니, 동네 아주머니들께서는 그런 내게 ‘종구라기’라는 별명을 붙여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별명이 ‘심부름 잘하는 아이’라는 뜻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종구라기’는 ‘조그마한 바가지’, ‘물이나 액체를 세는 단위’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름 없는 사물처럼 작고 평범하지만, 어딘가엔 꼭 필요한, 누군가의 손길 안에서 사랑받던 존재. 그런 종구라기가 어느새 환갑이 지났습니다. 그 별명을 지어주셨던 분들은 이제 모두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인생이란 긴 여행입니다. 작고 소소한 별명 하나에도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고, 그 별명을 불러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결국 살다가 떠납니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서로를 칭찬하고, 사랑하고, 행복을 나누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문득 이렇게 묻게 됩니다. 당신은 어떤 별명으로 기억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