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지식 충전소 (7. 나를 바꾼 큐 한 자루)

by 종구라기

나는 소심한 사람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에는 더했습니다.

1971년, 전주시 조촌국민학교(현, 조촌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시절 시험지는 등사기로 복사했는데, 때로는 글자가 희미하거나 짙게 나와 보이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선생님께 “잘 안 보인 다”고 말 한마디 못 하고, 그냥 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성격은 대학에 가서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1983년, 대학 1학년. 그 시절의 유행은 A(alcohol), B(billiards), C(cigar), D(date)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느 것도 즐기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레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도 적었고, 1학년이 끝날 무렵엔 같은 과 친구들 중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술집, 다방, 당구장이 왜 이렇게 많은지,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다 망할 텐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1학년 초, 고교 선배들이 클럽 전체를 빌려 공과대학 신입생 환영 미팅을 주선해 주셨습니다. 처음 해보는 미팅 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만났지만, 소심한 나는 이름만 묻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한참 후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잠깐 화장실 다녀오겠다”라고 말한 뒤,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날 그분께 이 자리를 빌 려 조용히 사과드립니다.


1학년이 끝날 즈음, ‘이러면 안 되겠다. 나도 변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떠올린 건 당구였습니다. 직장에 다니던 누나에게 당구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자, 매달 2만 원씩 당구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 전북대학교 앞 ‘자애당구장’은 10분에 100원이었기에 2만 원이면 30시간 이상 게임이 가능했습니다. 패배한 사람이 당구비를 계산했기에, 지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연습했고, 덕분에 많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2학년 때에는 내가 먼저 친구들에게 “당구 치러 가자”라고 말하였고, 재미없는 수업은 빼먹고 당구장으로 향하기도 했으며, 어느새 전기과 친구들과 대부분 친해졌습니다.

큐를 들고 빨간 공을 향해 힘차게 흰 공을 밀어내는 그 동작이, 나의 움츠러든 성격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소심했던 나를 바꾼 건, 나무로 만든 큐 한 자루였습니다.


뉴스를 보면, 종교적인 갈등, 정치적 분열, 빈곤, 질병 등 세상은 여전히 갈등과 상처로 가득합니다.

갈등과 상처로 가득한 세상을 바꿀 “큐”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keyword
이전 06화1부. 지식 충전소 (6. 종구라기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