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꽃다발)
아내가 소속된 중창단의 작은 음악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작은 소도시 교회에서 열린 조용한 행사였고, 아내 역시 꽃다발을 준비하라는 말이 없어
그냥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고 음악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음악회 중간 즈음, 문득 ‘작은 꽃다발이라도 준비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둘러 근처 꽃집에 들러,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적당한 가격의 꽃다발을 주세요” 하고 3만 원을 지불했습니다.
꽃을 받은 후 급히 돌아와 아내에게 건넸지만, 정작 꽃잎은 시들고 변색되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고맙다고 말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꽃 상태와 가격을 묻더니 살짝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저 역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남았고, 이 경험을 계기로 몇 가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첫째, 꽃을 미리 준비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나의 불찰이었습니다.
미리 준비했더라면 중간에 자리를 비우지 않고 음악회 전체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고,
더 싱싱하고 예쁜 꽃으로 아내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 꽃다발을 주문하면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은 점도 잘못이었습니다.
어떤 꽃을 원하며, 싱싱한 상태인지, 얼마 정도 예산인지 명확히 전달하지 않은 제 책임이 큽니다.
상대가 알아서 잘해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는 종종 실망으로 돌아옵니다.
셋째, 꽃집의 태도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비록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은 중년 남자가 와서 꽃다발을 주문했더라도,
플로리스트로서의 양심과 상도덕이 있었다면 시든 꽃을 팔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우리 가족은 그 꽃집을 다시 찾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경험을 지인에게 전하게 된다면, 그 꽃집은 3만 원의 이익이 아니라
그 10배 이상의 손해를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집 근처에 맛있는 칼국수집이 있어 친척이나 지인 모임 장소로 자주 이용했는데,
어느 날 반찬을 재활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그곳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소비자이자 동시에 제공자입니다.
정직한 영업, 상대에 대한 예의,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태도는 단순한 매출 이상의 신뢰와 관계를 남깁니다.
이 작은 꽃다발 사건을 통해 묻게 됩니다.
무슨 일을 당하기 전에 미리 철저히 준비하고 있나요?
실수나 오류가 없도록 명확하게 설명하고 지시하고 있나요?
나만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속인 적은 없나요?
정직과 성의는 결국 돌고 돌아 자신에게로 되돌아옵니다.
오늘도 나는 어떤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주는 ‘꽃다발’은 싱싱한가,
스스로에게 묻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