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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출간 후 생각 들 (8. 지렁이 그림)

지렁이 그림과 인생 해법

by 종구라기

저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라고 불렀지요) 시절,

어느 날 선생님께서는 “한반도를 그려오세요”라는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저는 고민 끝에, 지렁이 몇 마리를 구불구불 그려서 제출했고 결국 선생님께 혼쭐이 났습니다.

그림을 잘 못 그리니 그림 숙제가 정말 싫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어느 날, 무심코 TV를 보다가 한 미술가가 말하는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가로, 세로로 줄을 그어 여러 칸으로 나누고,

그 칸 안에 있는 대로 천천히 따라 그리면 됩니다.”

정말 단순한 이야기였지만, 제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 한 말이었습니다.

나에게 준 숙제는 아니었지만, 그 방법을 직접 따라 해 보았더니 저도 놀랄 만큼 그림이 제법 비슷하게 그려졌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예전의 ‘지렁이’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그 경험은 단지 그림을 넘어서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그림’과 같은 문제를 마주합니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문제가 도무지 풀리지 않을 때, 혹은 너무 복잡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

포기하지 말고 ‘줄을 긋고, 잘게 나눠서’ 들여다보세요.

작은 단위로 쪼개어 바라보고, 천천히 하나씩 따라 하면 어느새 형태가 드러납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거나,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이들의 발자국을 살펴보면 실마리가 보입니다.

선배의 조언, 동료의 격려, 책 속의 한 문장이 의외로 정확한 정답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답을 참고하고, 잠시 그 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만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시험에는 단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삶은 늘 열려 있고, 다양한 답이 존재하며, 그중 '내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인생입니다.

“힘들 땐 타인의 답을 참고하세요.”

혼자 끙끙대기보다 누군가가 먼저 풀어놓은 길을 잠시 따라가 보는 것도

충분히 괜찮은 삶의 해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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