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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전기인 이야기 - 16.5

[7. 서울 생활 이야기]

by 종구라기

7-2.5. 미분양 주택 판매전담팀 파견


1998년,

IMF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휘청이게 하던 시기였습니다.

거리는 침묵했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막막함이 어려 있었습니다.

IMF 외환위기란

1997년 말에 발생한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안긴 사건입니다.

IMF, 즉 ‘국제통화기금’은 금융 위기에 빠진 나라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국제기구입니다.

1997년 말, 한국은 외환 보유고 고갈과 국가 신용위기로 인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습니다.


한보철강, 삼미그룹, 진로그룹, 기아, 대우...

굵직한 대기업이 무너졌고, 그 여파는 중소 협력업체와 금융권을 쓰러뜨렸습니다.

동남은행, 동화은행, 경기은행, 충청은행 등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상업은행, 한일은행, 서울은행, 외환은행, 국민은행, 주택은행 등이 합병되었습니다.

주가는 1994.11월 1,145에서 1998.6월 277까지 곤두박질쳤고,

실업률과 자살률은 연일 뉴스의 중심이었습니다.


정부는 IMF로부터 97.12월 550억 달러를 지원받으면서

재정 및 통화 긴축, 금융기관과 기업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시장 개방 등 고강도 구조조정 요구를 받았습니다.

중산층은 무너졌고, 비정규직은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아나바다 운동이 펼쳐졌고,

집안에 있던 금을 모아 나라를 돕는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도 아이들 돌 때 지인들에게서 받은 모든 돌반지를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시켰습니다

그 덕분에 한국은 2001년 IMF 구제금융을 조기에 상환했습니다.


우리 회사도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관리업무를 ‘뉴하우징’이라는 자회사로 분리했고, 미분양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판매전담팀’을 조직하여 아파트 판매에 적극 뛰어들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체에 판매 수수료를 지급하고, 판매 실적은 직원마다 체크되던 시절.

전기직인 저도 전기 업무가 아닌 미분양주택 판매전담팀에 파견되어 양주시 일원을 돌며, 은행, 우체국, 관공서 등에 미분양 아파트 판매 팸플릿을 비치하였고, 병원이나 규모가 큰 사업장을 방문하여 미분양 아파트 판촉 활동을 하였습니다.

일부 직원들은 판매 실적을 만들기 위해 보험회사 직원들처럼 자신 명의로 계약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전국에서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넘쳐났고,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대세였습니다. 결국 회사에서는 계약금만 받고 잔금은 유예하는 고육지책도 시행했습니다.

1999년 전 직원에게 퇴직금이 강제로 정산되었고, 누군가는 그 돈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샀고, 누군가는 주식에 몰빵 했다가 퇴직금을 잃었습니다.


인생은 사인곡선처럼,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고 궂은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고, 어두컴컴한 밤도 시간이 지나면 밝은 새벽이 옵니다.

IMF를 조속히 벗어났듯이, 경기도 좋아지면서, 일부 직원이 산 서울 휘경아파트는 시세가 오르며 이익을 안겼고, 뒤늦은 질투와 논란도 있었습니다.


1개월의 짧은 판매전담팀 파견 근무는 제게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판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반 강제로(?) 떠안은 아파트로 수익을 보는 직원을 보면서 ‘인생사 새옹지마’를 다시 한번 경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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