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20여 년 동안
우리는 내 집 없이 살아가는 세입자의 삶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전세 만기 전에 부랴부랴 짐을 싸고,
2년마다 원하지 않던 이사를 반복하며,
벽에 못 하나 제대로 박지 못하고 조심조심 살았습니다.
그런 날들이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2011년,
드디어 단독주택을 직접 건설하여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집 앞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텃밭에 상추, 고추, 방울토마토, 앵두, 대추, 감나무 등을 심었습니다.
시절을 따라 소소하지만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으며 살아가니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같은 모종으로 심은 방울토마토가 어떤 모종은 큼직한 열매를 200~300개씩 맺었고,
어떤 모종은 30개도 채 맺지 못한 채 작고 볼품없었습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는데 그 차이는 씨앗이 아니라, 밭에 있었습니다.
거름이 풍부한 땅에서는 열매가 풍성하게 열렸고,
거름이 없고 메마른 땅에서는 열매도 작고 적었습니다.
씨도 중요하지만, 밭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은 텃밭을 넘어, 사람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녀의 교육, 예절, 습관, 성품 형성에 있어서, 종종 "아버지의 씨앗"보다는 "어머니라는 밭"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씨앗이 선천성 재능이라면 밭은 후천성 노력입니다.
또, 밭의 의미는 꼭 '땅'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녀와 함께 오랜 시간 함께하는 사람이 밭입니다.
예전에는 아버지는 직장에 나가시고 어머니는 집에서 양육을 담당하시기에 어머니가 밭이었습니다.
요즘은 워킹맘이 대세이기에 반드시 어머니가 밭은 아닙니다.
아빠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으면 아빠가 밭입니다.
성경에도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길가에, 돌 위에,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끝까지 자라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좋은 땅, 옥토에 떨어진 씨앗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씨도 중요하지만 밭이 중요하다는 내용입니다.
내 마음은 어떤 밭인가요?
돌밭인가요, 가시밭인가요, 메마른 흙인가요?
아니면
열심히 거름과 물을 주고 관리한 좋은 옥토인가요?
이 작은 텃밭의 방울토마토가 저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