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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10. 맛없는 밥이 꿀맛으로)

by 종구라기

어려서부터 "밥 한 톨, 국 한 모금 남기지 말고 반찬도 골고루 먹으라"는 교육받으며 자랐기에

60년 동안 특별히 반찬 투정 없이 골고루 식사를 잘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여름철 반찬이 없고 밥맛이 없을 때에는, 밥에 찬물을 말아서 풋고추 몇 개로 때우기도 했고,

먹고 싶은 반찬이 없을 땐 있는 반찬 모두 때려(?) 넣어 비빔밥으로 먹기도 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나름 요령껏 먹다 보면 그럭저럭 먹을 만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늘 식사를 빨리 마치는 편이었습니다.

바쁜 일상도 이유였고, 때로는 함께 식사하는 일행의 속도를 맞추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식사 시간은 10여분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음식물을 오래 씹으면 달콤한 맛이 난다"는 이야기는 그저 건강 상식일 뿐,

제게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맥아당의 단맛' 이라니, 그게 과연 무슨 맛일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맨밥만 한참 씹다 보면 느껴지던 희미한 단맛,

며칠 전에는 식사 중에 상추를 씻게 되었는데, 무심코 입안의 밥을 수십 번 씹게 되었고...

거짓말처럼 혀에 달콤한 맛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침 속에 들어있는 '아밀라아제'라는 소화 효소의 마법이었습니다.

밥이나 빵 같은 탄수화물의 주성분인 녹말은 원래 단맛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음식물을 오래 씹을수록 침 속의 아밀라아제가 녹말을 맥아당이라는 작은 단위의 당으로 분해합니다.

이 맥아당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달콤한 맛의 근원이었던 겁니다.


저처럼 식사 시간이 10분을 넘지 않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이런 빠른 식사 속도는 여러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1. 과식 및 비만 위험 증가 : 뇌가 포만감을 인지하기까지 최소 15~20분이 걸린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빨리 먹으면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많은 음식을 섭취하게 되어 과식하고, 이는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 소화 불량 및 위장 질환 : 음식을 충분히 씹지 않고 빠르게 삼키면 위와 장이 더 많은 부담을 안게 됩니다. 이는 소화 불량, 속 쓰림, 위산 역류, 위염 등의 위장 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3. 급격한 혈당 상승 : 음식을 빨리 먹으면 혈당이 급격하게 상승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슐린 분비에 부담을 주어 장기적으로 당뇨병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습니다.

4. 영양 흡수율 저하 : 음식을 제대로 씹지 않으면 영양소 흡수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침 속의 소화 효소가 충분히 작용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5. 지방간 위험 증가 : 빠른 식사 속도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6. 뇌 기능 저하 : 음식을 천천히 씹는 행위는 뇌의 혈류량을 증가시키고 뇌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빨리 먹으면 이러한 뇌 자극 효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저도 여전히 오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밥맛이 없을 때 어릴 적의 기억과 며칠 전 상추의 단맛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음식물을 오래 씹어보려고 노력합니다.

만약 지금 밥맛이 정말 없다면, 오늘 저녁 식사에서 딱 한 번만 시도해 보세요.

다른 반찬 없이 맨밥만이라도 좋으니, 한 숟가락 입에 넣고 '백 번' 씹어 보세요.

분명히, 녹말의 그 밋밋함 뒤에 숨어있는 달콤한 맛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여러분의 식사 습관과 건강에 놀라운 기적을 가져다줍니다.

우리 모두, 바쁜 일상 속에서도 '느리게 씹는 즐거움'을 찾아 건강하고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전!

'백 번 씹기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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