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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출간 후 생각 들(10. 나는 커닝하고 있습니다

나는 커닝하고 있습니다.

by 종구라기

교회에 다니고 있는 집사입니다.

예배시간에 장로와 집사들이 대표 기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 차례가 돌아오며 여러 성도들 앞에서 하는 대표 기도는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감사, 회개, 간구 순서로 하고 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의 옷이 바뀌고 나에게 대표 기도의 부담이 숙제처럼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기도문을 작성하고 암기하느라 수십 번 읽었고, 전체 흐름과 내용을 숙지하여 무사히 기도를 마쳤습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기도문 숙지를 소홀히 하였더니 중언부언하는 실수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표 기도할 때 실수하는 것보다 차라리 대표 기도문을 작성하여 종이를 들고 기도하는 게 낫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대표 기도의 부담감이 80~90 % 줄었습니다.

인터넷이나 기존의 기도문에서 참고하여 정리하고, 몇 번 읽으면 '숙제 끝'이기 때문입니다.

불안했던 한 주가 편안해지고, 다른 일에도 마음을 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에도 커닝을 하지 않았는데 기도를 커닝하고 있다는 사실과, 몇 번 읽어 보고 '기도 준비 끝'이니 기도문이 완전히 소화되어 영양분으로 변화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일 년에 몇 번하는 대표 기도가 부담이 되었는데, 목회자들은 하루에 여러 번 하는 설교가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는 거의 없었는데 요즘 목회자들은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보며 설교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좋은 설교를 실수하지 않고, 준비한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의도는 좋습니다. 하지만 나의 사례처럼 남의 설교를 커닝하거나, 여러 감투를 쓰기 위해 각종 모임이나 대외 활동에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기 위해 '설교 준비 끝'은 곤란합니다.

설교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음식을 입안에서 수십 번 충분히 씹어야 단 맛과 영양분이 우려 나오듯, 엄마가 음식을 충분히 씹어야 아이에게 줄 젖이 나오듯, 목회자도 설교 내용을 수십 번 묵상하면 할수록 풍부한 엄마의 젖이 되어 아기 같은 성도들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전기기술자, 생각에 감전되다' 도서를 출간하였습니다. 원고 작성, 퇴고와 탈고 과정까지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읽고 생각하고 수정하니 자연스럽게 전체를 암기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들도 설교 내용을 수십 번 묵상하고 정리하면 자연스럽게 암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 직장인들은 하루에 8시간 회사에서 일을 해서 월급을 받고, 가족을 부양하고 있습니다. 출퇴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뜨거운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3D 업종에서 일하고, 갑질하는 고객의 욕설을 들으면서도 참고 일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본분은 기도와 말씀연구입니다.

성도들의 피와 눈물로 드린 헌금은, 목회자가 적어도 하루에 8시간, 아니 그 이상을 기도와 말씀 연구에 집중하라고 드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효자는 부모님의 희생을 기억하고 자녀로서 도리를 다하는 사람입니다. 참된 목자는 성도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도와 말씀 연구에 적어도 하루 8시간은 할애하는 분입니다.

커닝 없이 탁월한 설교로 은혜를 준 빌리 그래함, 조용기 목사님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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