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022년 1월 11일
나의 삶이 어느새 주마등처럼 쏜살같이 지나와서 중년의 나이가 되어버렸고, 이제는 건강과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갑작스럽게 나의 지나온 유년의 시절과, 학령기, 청소년기, 성년이 되었을 시절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유년의 기억은 주위 어른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재구성하는 것일 뿐 내가 정확하고 기억하는 내용은 많지 않다. 내가 여섯일곱 살 되어 갈 부렵, 또래와 놀지 않고 혼자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수줍음도 많고 부끄러움도 많았던 나는 또래 친구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조개껍질 먹고~'이 밖에도 많은 동요를 부르면서 고무줄놀이를 할 때 나는 의자 다리에 고무줄을 끼워 넣고 혼자 놀았었다.
이유는 다른 친구들은 키도 크고 다리도 길어서 자신들의 키보다 고무줄을 더 높게 올려도 훌쩍훌쩍 잘도 타 넘어가면서 놀았지만, 나는 키가 장난쟁이 똥자루만 해서 다리도 숏다리여서 솔직한 심정으로는 심한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ㅋㅋㅋ ㅎㅎㅎ 하고 웃으면서 말을 하지만, 그 시절에 나에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은 콩나물, 시금치, 우유 등을 골고루 잘 먹으면 키가 쑥쑥 크고 건강해진다고 했지만, 그렇게 말 그대로 따라 했으나, 결과는 떼부장처럼 옆으로 컸다는 사실을... 그 당시 선생님들도 정확한 지식을 모르셨었나 보다. 맞춤 설루션 시대가 아니었기에....
중고등 학창 시절에는 중학교 갓 입학해서도 우리들은 동요 외에는 아느 노래가 별로 없었다. 어느 학년이었던가... 학과목 선생님은 "너희들은 이제 어린 아동이 아니다. 대중가요 한 곡 정도는 부를 줄 알아야 한다"라고 과제 한 곡씩 암기해 오라는 과제를 내주던 시절도 있었다. 야~ 그 시절만 해도 참 순진했던 우리들이었다. 아닌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중학생 시절에도 우리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다방구 게임',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땅따 먹기' 등의 운동장에서 신바람 나게 놀던 시절이 있었다.
또 학년이 끝나갈 무렵, 담임 선생님은 그 많은 60여 명이 되는 학생들한테 일일이 손 편지를 써서 한 명 한 명 나눠주셨던 기억도 난다. 그때 얼마나 마음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촉촉하게 적셨는지...
고등학생 시절에는 양계장에 갇힌 닭처럼 야간자율학습이란 시간도 있었지만, 난 어떤 이유였는지 공부에 손을 놔버렸다. 그렇다고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는 일은 없었지만, 내 마음 안에 알게 모르게 수없는 고민들을 하고 살아왔다. 체육과목이 어느 학년인가부터 사라졌다. 난 아주 신바람이 났었다. 하지만 체육과목이 사라지고 나의 건강은 추풍낙엽처럼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5분만 걸어도 숨이 차서 어디 앉을 곳을 찾아야 했고, 기어코 병원신세까지 져야 하는 상황이 왔었다. 운동을 당장 하지 않으면 내일을 잠담할 수 없다고 했었다. 그래서 반상회보와 지역소식지 광고를 찾아보면서 내가 즐겁게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운동종목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게 되었다. 마땅한 것은 못 찾았고, 그나마도 에어로빅 종목이 눈에 띄고 관심이 갔다.
가까운 주민센터 운동 시간에 맞춰 방문을 했었다. 그때 내 나이만 해도 에구머니나~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쥐구멍이라도 숨어들 공간을 찾고 싶었을 정도였다. 그때 내 나이는 부끄러움과 수줍음이 있었다. 의상 자체가 탐탁지 않았었다. 언제 한 번 그런 과격한 의상을 입어본 경험이 전무했으니 말이다.
그런 과격한 환경에 적응이 될 동안까지는 학창 시절 입었던 체육복을 입고 운동을 했었다. 에고~ 얼마나 체력이 약했었는지, 한 두 가지 동작을 하고 나면 맥없이 주저앉아 쉬어야 했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절대 과격하고 격렬한 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걷기 운동을 처음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늘려가야 한다는 사실도 10여 년이 지나서 알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7년 즈음 흘렀을까? 나도 자연스럽게 에어로빅 전용 의상을 갖춰 입고 운동을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나는 내 또래 친구들하고는 어울려서 놀아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었으니까 나에게선 자연스럽게 '아줌마' '할머니' 란 단어로 불렀는데, 그 어른들은 질색을 하면서 싫어했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내 나이가 달걀 한 판 지나서 어느 단체에 소속되고 사회생활이 폭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그 문화에 휩쓸리고 왕언니라는 말들이 서슴없이 그렇게 물 흘러가듯이 지내는 시절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난 직장생활도 하면서, 가끔 시간이 될 때 운동을 하곤 했었다. 에어로빅 외에도 라인댄스, 줌바댄스 등을 알게 되어 배우기도 했었지만, 워낙 몸치여서 그냥 즐기는 정도로만 만족했었다.
시낭송 시치유 모임이 인근 도서관에서 개최된다는 공고문을 확인 등록하고 그렇게 나는 나이를 막론하고 직업을 떠나서 남녀노소 누구하고 어울려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세월의 무게가 흘러갔다. 시낭송은 처음이라 마음 깊이 공감하는 시 한 편을 선정해서 음성녹음기에 내 목소리를 녹음하여 들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들어보라고 하면서 수없이 수정작업을 하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시낭송을 할 차례가 다가왔다. 난 무대에 올라가면 당연히 사시나무처럼 엄청 떨어서 우황청심환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이제 뭣이여! 전혀 떨림도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의 가족들, 친구들한테 시 한 편을 들려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암송을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낭송도 들으면서 난 힐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눈물도 적셨다. 마음 뭉클함도 느꼈었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연령대를 경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점차적으로 넓혀갔다.
오늘 문득 아련한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기억이 났다. 지금은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도, 나랑 동년의 사람들과도, 나보다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과 고루 어울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현재 누구와도 만날 수도 없는 시절을 겪고 있다. 마음의 거리는 좁히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마음에 멀어지니 자연스럽게 거리도 멀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언제 즈음 햇살 따스한 봄을 마주할 수 있을까?
처음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도 있다고 했는데, 과연 끝맺음이 다가올까? 꼭 다가왔으면 좋겠다.
나의 중년 이후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나의 아이들 세대의 문화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불통이 되지 않고 소통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세월의 무게는 어찌할 수가 없는가 보다. 자주 깜빡거려 '아~차! 거기 있었구나, 이제야 생각이 났어' 등의 건망을 이따금 호소하고 있다. 전자계산기보다는 암산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건망증 완화에 좋다는 식품도 찾아보게 된다. 키보드를 따다다 다 치는 원고도 나중에 A4 200~400자 원고지에 손글씨로 옮겨 쓰고 있다.
미래의 나의 장년기, 노년기는 어떻게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