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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Aug 20. 2021

명필이 붓 가리랴. (能書不擇筆)

     

  식도락, 강호지락, 운우락, 취옹지락, 천륜지락...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다지만 아직껏 ‘문구락(文具樂)’은 들어보지 못 했다. 이런 단어가 있다면 취미 란에 씩씩하게 ‘문구락’이라고 쓸 것이다.

   나는 문방구를 탐하고 그것들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각종 문구류 종합 판매점, 특히 교보문고의 ‘핫 트랙스’에 들어서면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이다. ‘맛있는 녀석들’의 네 분 출연자들이 전날 부러 불굴의 정신력으로 세 끼를 굶어 배를 비우고 식욕을 한껏 고취한 뒤 마침내 칠성급 호텔 뷔페에 입장했다손 쳐도 핫 트랙스의 환상의 세계에 들어선 나보다는 일찍 정신을 수습하리라.

    재미있다. 신기하다. 아름답다. 기발하다. 그 정치함과 세련된 자태하며 ‘아하!’ 탄성을 자아내는 쓰임새에 마주서면 손이 벌벌 떨리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곡절과 영험이 있기에 평소에는 전혀 못 느꼈던 ‘간절하고 운명적인 필요성’이 그 순간 떠오르는지는 아직껏 파악하지 못 하였다. 다만 추측하기로는 문구류를 디자인하고 기획하는 이들의 면접 항목으로는 최면술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보곤 하는 것이다. 

    맹세하건대 단 한 번도 빈손으로 문구점을 나선 적이 없다. 하다 못 해 연필 한 자루, 지우개 하나라도 들고 나서는 것이다. 아니다. 한 번 있었다. 교회 행사 준비로 강남 교보문고를 가게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도 모르게 핫 트랙스의 꿈과 환상의 세계로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홀려 들어갔다. 무엇인가를 고르고 골라 계산대로 가려는 순간 일행이 뒷덜미를 낚아챘고, 버둥거리며 끌려나왔다. 그때 골랐던 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바로 그 순간’ 그것을 손에 넣었다면 엄청나게 값지고 아름다운 성취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렴! 옳거니!      

    나는 공감한다. 등산, 낚시, 캠핑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절대로 남대문시장의 전문상가를 구경하면 안 되는 것처럼, 첫 차를 장만한 스물 몇 살의 청춘이 절대로 자동차 액세서리 매장과 인터넷 쇼핑 사이트를 방문하면 안 되는 것처럼, 사랑에 빠진 지 일주일 된 여자아이가 2월 14일을 앞두고 초콜릿 가게를 기웃거리면 안 되는 것처럼, 다이어트를 결심한 참새가 방앗간 위를 낮게 날면 안 되는 것처럼, 나는 그곳에 가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종종, 너무 자주 이성은 뒤늦게 발동되곤 한다는 인생의 진리에.     

    그중에 내가 특히 끌리는 것은 필기구이다. 한 뼘 남짓한 그 몸뚱이는 그야말로 총체적 과학 기술과 전통의 집합체이다. 종류는 감히 헤아릴 수 없고 형형색색의 날렵한 유선형이거나 뭉툭하고 둔중하여 오히려 정이 가는 모양새는 찬탄을 부를 뿐이다. 펜(이라고 칭하자) 하나하나마다 사연이 있고 느낌이 다르다. 동일한 지문이 존재하지 않듯 동일한 펜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연필은 너무 잘 미끄러지는 것은 좋지 않다. 섬세하게 까끌거리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볼펜은 무엇보다도 ‘똥’금지! 아무리 유명 브랜드의 비싸고 예쁜 볼펜도 ‘분즉별(糞卽別)’, 똥 나오면 이별, 상봉불가이다. 만년필은 닙의 호수에 따라 굵고 가는 미덕은 제 멋대로 인정하되 역시 약간은 거친 필기감이 좋다. 조용한 시간, 투박하고 두꺼운 질감의 종이(몰스킨, 셰퍼나 콩코르 또는 모조지 혹은 수채화용지 따위)에 글자를 쓸 때 섬유질을 긁어내는 듯 한 사각사각 소리는 귀를 호사롭게 한다. 붓펜이나 캘리그래프 펜은 허리가 탄력 있게 튼실해야 하고 샤프는 0.7밀리 이상의 두께감이 좋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파버 카스텔의 3.15밀리 홀더인데 그래도 갓 깎은 연필에는 못 미친다.     

    바르게 마주한 펜은 오감을 만족시킨다.

    눈으로 펜을 감상하고 그것으로 쓴 글을 보는 재미가 그 하나요, 종이와 펜 끝이 마찰하며 내는 정적이며 동시에 동적인 하모니와 촉감이 또한 그렇다. 어쩐지 쇠의 맛이 나는 듯 한 잉크의 향기와, 옛날 옛적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흑연의 그것은 은은하고 지적이다. 무엇보다도 아무 종이에다가, 어디에선가 판촉용으로 받았을 펜을 사용하여 헐레벌떡 휘뚜루마뚜루 내갈겨 쓰던 나의 일상이 이렇게 마주 앉은 자리에서는 놀랍도록 차분해지고 때로 숙연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쓰다 보면 어느새 쓰는 것에만 녹아들어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일상의 버릇대로 급하게 튀어나가려 다가도 펜 끝이 나를 적정 속도로 제어해 주는 것이다. 


    몇 해 전에 나의 온갖 펜들을 세어본 적이 있다. 약 70여개의 펜이 손가방 안에 담겨있었고(색연필과 연필 세트, 붓펜, 마커 류는 제외하고) 그중 만년필은 열 몇 개 되었다. 만년필 몇 개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기분을 냈고, 너무 오래 사용하지 않아 잉크가 굳고 낡은 볼펜은 미안하지만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남은 펜들은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손글씨와 글 쓰는 재미를 그 후로도 한동안  만끽했다.(본디 좀 좋아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 심지어 어렴풋이도 기억나지 않는다. 한 2년 쯤 되었을까 - 그 많은 펜들을 다 가방 속에 처박아놓고 파커 조터 볼펜(기내 판매의 인기 아이템)한 자루와 모나미, 그리고 뚜껑을 씌운 연필만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당연히 글을 쓴다거나 손글씨로 메모 또는 편지를 쓰는 행위 따위는 바쁘다는 핑계와 함께 저 멀리 사라졌고, 오래 전 읽은 소설 줄거리처럼 희미하게 기억으로만 자리했다. 흔하게 내세우는 핑계는 사실 혹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그것은 누구나 ‘그러려니’하며 상대에게 발부하는 값 싼 범칙금 스티커이자 스스로를 무마시키는 데 유용한 페이크 모션이다. 나도 다르지 않다.     

    얼마 전에 우연히 페이스북의 ‘만년필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그룹을 발견하고 가입을 했다.(철이 없었죠. 만년필이 좋아 여기까지 들어왔으니까요 feat. 피식대학 최 준) 그 안에서 활동하는 많은 분들의 다양한 만년필 자랑(^^)과 그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 그리고 전문가스러운 식견들이 내 마음을 호강시켜 주었다. 불현듯 나의 만년필들을 까맣게 잊고 살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고, 그들이 그리워졌다. 그러고도 며칠을 벼르다가 드디어 어제 손가방에서 펜들을 꺼냈다.     

    종류별로 구분하여 볼펜은 마른 걸레로 닦아 주고 매끄럽게 써지는지 살폈다. 만년필은 제법 꼼꼼히 상태를 살핀 후 당장 필통에 넣고 다닐 것들과 서랍에 넣고 쓸 것들을 골라냈다. 아! 지난한 선택의 과정이여. 언젠가는 너희들의 보직을 변경하여 주리라.

    마음이 급하다. 원래 꽂히면 서두른다. 만년필을 분리하여 식초를 몇 방울 떨군 미지근한 물에 담갔다. 메말라 굳어있던 잉크의 기억이 점차 잔잔한 저녁 농가의 연기처럼 오롯이 한 줄로 피어오르다가 이내 퍼졌다. 물과 검정 잉크와 파랑 잉크와 초록 잉크가 섞여 이름을 알 수 없는 색의 액체가 되었다. 용기의 바닥에는 잉크의 침전물이 마치 SF 영화의 신비한 물질 마냥 고였다.

    마음이 급하다. 원래 꽂히면 서두른다. 두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새 몇 차례를 들여다본다, 물을 갈아 넣는다, 다른 일을 온전히 하지 못한다, 쯧쯧!

    마음이 급하다. 꽂히면 서두른다. 그럼에도 용케 세 시간을 기다렸고, 없던 호연지기를 발휘하며 한 번 더 물을 갈아주었다. 시계를 보니 줌 미팅 시간, 회의를 마치고 펜을 건져내어 물기를 닦고, 털어주었다. 가지런히 늘어놓고 밤샘 자연건조 모드로 돌입. 새로 구입한 컨버터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내일 잉크를 가득 채워 넣을 것을 기대하며 오늘은 일단 이만.

    여섯 자루의 만년필을 잉크를 채워 한 번씩 써보았다. 검정, 블루 블랙, 그린의 3색 잉크. 워터맨, 라미, 몽블랑, 크로스의 조합이다. 마치 처음 쓰는 것처럼 신선하다. 반갑다. 낙서처럼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을 계속하다가 제대로 문장을 써보기로 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와 만년필” 일부 필사. 오늘은 이 것 하나로도 족하리.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장안의 지가를 들썩일 명문장을 남기는 일만 남았다. 도톰하며 약간 거친 질감의 종이를 이 펜들을 쥔 채 마주 앉는 것이다. 그간 켜켜이 쌓아 두었던 반짝이는 총기와 재치 넘치는 이야기와 영롱한 생각의 구슬들이 아름다운 단어와 리듬감 넘치는 문장으로 줄줄이 꿰어질 것이다. 얼쑤! 아무렴!     

    망상(妄想)은 강원도 해수욕장의 이름이 아니다. 다정도 병인데 하물며 망상이야. 구양순이 붓을 가렸을쏘냐! 그저 작은 기쁨에 흥이 겨웠음을 헤아려 주시라.   

  

    “나와 만년필” -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물론 개중에는 만년필이 취미라는 사람이 있어 이들은 한 자루를 다 쓰기도 전에 싫증이 나서 또 새것을 사고 싶고, 그걸 손에 넣고도 금세 다른 종류를 갖고 싶어서 줄줄이 각종 펜촉과 펜대를써보며 기뻐들 하는데, 이런 취미가 오늘날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략) 

    만년필광의 경우는 다소 실용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굳이 없어도 될 물건을 다섯 자루고 여섯 자루고 모아다 늘어 놓는 것이니 앞서 말한 다른 종류의 수집광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중략)  

    마루젠에서 하루에 팔리는 백 자루 가운데 구십구 자루는 통상 평범한 사람의 필요에 의해 책상 위 또는 안주머니에 갖춰두는 실용품이라 봐도 지장이 없으리라. (중략)

    편리하다고 하는 실용적인 동기에 지배당했다는 것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만년필에 대하여 전혀 경험이 없었던 나는 당시 마루젠에서 펠리칸이라 불리는 것을 두 자루 사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것이지만, 불행히도 나의 펠리칸에 대한 감상은 매우 좋지 않았다. 펠리칸은 내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잉크를 쓸데없이 방울방울 원고지 위에 떨어뜨리거나, 또는 꼭 잉크를 내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때 완강히 요구를 거절하거나 하여 몹시 주인을 학대했다. 하기야 주인인 나도 펠리칸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무정한 나는 잉크가 다 떨어지면 손 닿는 대로 책상 위에 있는 어떤 잉크라도 신경쓰지 않고 펠리칸의 뱃속에 부어 넣었다. 또 본디부터 블루블랙을 싫어하는 나는 구태여 세피아 색의 먹을 사와서 거리낌 없이 펠리칸의 입을 열어 마시게 했다. 게다가 경험이 없던 나는 어떻게 펠리칸을 다뤄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실제로 펠리칸이 아무리 잉크를 뱉기 싫어해도 나는 씻겨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중략) 

    술꾼이 술을 이해하듯 펜을 취급하는 사람이 만년필을 이해하지 못해서는 민망한 날이 멀지 않은 게 아닐까. 펠리칸 하나 써보고 만년필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내가 세인들의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니 어서 다른 만년필을 시험해 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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