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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Oct 04. 2021

雜 둘.     “운동을 하기로 했다.”

    지난 주에 오랜만에 목욕탕엘 갔다. 가장 마지막으로 간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없다. 씻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코로나 때문이다.

    며칠째 너무 찌뿌둥하고 온몸이 쑤셨다.(어른들이 말씀하는 ‘삭신이 아프다’가 딱 이런 증상일 것 같다.) 아마도 벌초와, 농노로서의 하루 - 친구 텃밭에 끌려가서 땅콩 캤다. 장장(?)세 시간 - 그리고 장거리 운전 후유증 등이 겹쳤나 보았다. 게다가 그날은 일하면서 땀을 몹시 흘렸기에 코로나의 위협 앞에서 용기(백신 접종 완료)와 핑계(너무너무 괴로워)를 방패 삼아 목욕탕엘 간 것이었다. 


    냉, 온탕과 사우나를 왔다 갔다 하니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파우더실에서 물기를 닦으며 전신 거울 앞에 섰다. 나르시시즘의 원형. 귓불을 타면서 이어진 섬세한 목선이 깊은 그늘의 쇄골과 각진 어깨로 나뉘어 흐른 뒤, 굵은 근육과 잔 근육의 줄기들을 만나 때로 거칠게 때로 부드럽게 이어지다가 기둥 같은 허벅지에 이르니 마치 두툼한 스테이크 조각 같은 단단한 근육 덩어리 세 개가 턱 하니 포개져 있....기는 커녕 예전 미소년은 온데간데없이 왠 늙은 Extra Terrestrial 한 개체가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경악과 공포!     


    노화의 몇몇 증거들이 있다고 한다. 머리가 세고, 주름이 생기고 등등 외에.

    귀가 늘어지고, 어깨가 좁아지고, 갑빠가 흘러내리고, 탄력이 없고, 사우나를 했음에도 윤기가 나지 않으며, 복부 비만에, 허벅지가 초라하게 앙상해지고, 원치 않는 부위에 백발이 생기고, 다른 젊은이들의 몸을 흘낏 보며 ‘나도 전에는...’ 이러면서 평가절하하려 애쓰고, 엉덩이 밑에 주름이 잡히는 것 등 말이다.

    내 경우에 다는 아니지만 – 당연하지, 암! - 그중 몇 가지의 조짐이 살짝, 아주 아주 살짝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단순히 코로나로 인한 운동 부족의 결과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찜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철렁 가라앉게 만든 것은 엉덩이 밑의 주름이었다.(미세한 실주름이다. 진짜다. 내가 내 몸이니까 겨우 발견한 거지 다른 사람은 봐도 모를 거다. 정말이다. 뭐? 같이 목욕탕 가보자고? 싫다. 지금 이 엄중한 코시국에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참 내.)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엉덩이가 없냐?”

    착, 위로 올라붙어 탄력과 체력을 상징하고 과시했던 natural born 엉뽕의 소유자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이것은 분명히 노화의 증상이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만 한다. 아니다. 운동을 쉬어서 그런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손실의 현저한 방증인 것이다.   


    운동하면 된다. 하루에 스쿼트 300개씩 6개월 동안만 ‘꾸준히’ 하면 곧 회복될 거다. 좋아! 결심했어.  

  

    음, 그런데 하루에 스쿼트 300개는 좀 빡센데... 지루하기도 하고... 자칫 근육이나 관절에 무리라도 가면 심한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어. 스쿼트 잘못하다가 허리 아대 차는 사람 여럿 봤잖아. 또한 나는 운동이 잘 받는 체질이라 스쿼트를 본격적으로 하면 엉덩이 부분만 급속 빌드 업될 것이고, 그리되면 전체적인 실루엣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어. 내가 킴 카다시안도 아닌데.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하체 운동도 되면서 다이어트에도 직빵인 것은 뭐가 있을까? 코시국에 헬스클럽은 안되고, 주특기인 농구를 하자니 코트 개방된 곳이 없고, 자전거는 곧 ‘자출사’하기로 했으니 됐고. 


    음... 그래 뛰자! 3개월쯤 한강을 뛰면 다이어트도 되고, 하체도 복원될 거고, 잘만 하면 동호회 마라톤 대회 같은 데도 출전할 수 있겠지. 나야 운동이 잘 받는 체질이니까. 조금만 더 주력한다면 곧 하프나 풀코스 완주도 가능할 거라고. 그 다음에는 당연히 sub5를 너머 sub3도 가능할 거고. 그래. 드디어 Runner’s High의 세계에 들어가 보자.     

    세부적인 계획을 짰다. 매일 저녁 8시 반에 한강 변을 1시간씩 달린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10시 15분쯤 될 것이다. 샤워를 하고, 늦은 저녁에 맥주 한 캔을 곁들인다. 캔은 작은 것, 카스 또는 테라. 갈증 해소와 청량감 추구에 대한 과한 욕심을 이겨내야 한다. 뉴스 검색과 유튜브를 좀 보다 12시에 취침, 3시 50분에 기상. 예배 유튜브 라이브 송출. 일상. 8시 반 달리기...


    물론 초기에는 뛰고 걷는 것을 조합하여 하루 5Km를 달려, 월간 100km 주파를 목표로 한다. 다음에 200Km, 300Km로 목표를 늘려 성공하면 겨울이 지날 것이고, 2022년 상반기에 하프마라톤, 하반기에 풀 코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이를 위해서 마라톤 관련 책을 두 권쯤 읽는다. 모든 운동은 이론과 기본기, 알맞은 용품에서 시작된다. 수영도 방에서 책으로 먼저 배웠고, 농구, 탁구, 테니스, 볼링 등 모든 구기종목도 그리했다. 덕분에 내가 익힌 모든 운동의 기본 동작에 아름답게 각이 잡혀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종목에 탁월하지는 않은 이유는 내가 나의 소질의 발견에 따른 성취감에만 다소 몰두하여 꾸준한 연습을 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나는 운동이 잘 받는 체질이므로.


    관절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운동화는 반드시 ‘에어’가 부착된 것이어야 한다. 재작년에 시즌 오프 행사에서 운 좋게 구입한 흰색 나X키 운동화를 전용 슈즈로 임명했다.


    간절기이므로 적절한 복장을 준비해야 한다. 수요일, 인터넷을 약 8시간쯤 뒤져 Jogger 추리닝 - ‘트레이닝복’ 보다 훨씬 정감이 있다 - 바지를 검색하고 그 중 세 개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하지만 재질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 몇 군데 로드샵을 다니며 살핀 후에 하나를 구입했다. 

    지하철을 타고 마라톤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Just Do It! Let’s Run! 

    

    지하철 역사를 나왔다. 어, 어, 비 오네.

    한참을 비긋고 있었는데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고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가야만 했다. 비닐 쇼핑백으로 머리를 가리고 뛰었다. 나의 첫 번째 Running!  

   

    목요일은 다행히 날이 좋았다. 무릇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뛰기 좋아야 하는 법이지만 아무튼 날이 좋아, 좋았다.

    단단히 채비를 하고 한강둔치길에 나섰다. 어마어마한 사람들.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 아 다들 이렇게 운동에 진심이구나. 좋았어. 나도 오늘부터 진심이다. 반포까지 뛰다 걷다 했다. 숨은 턱에 차오르고 다리는 무거웠다. 희한하게도 맨손으로 뛰었는데 어깨가 많이 뻐근했다. 뿌듯했다. 힘들지만 상쾌함이 한강 강바람에 묻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밤 둔치 길을 찍었다. 이 세상의 모든 첫날은 기념되어 마땅하므로.


    10시 15분쯤 집 도착. 샤워하고 늦은 저녁과 카스 한 캔을 마셨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다. 침대에 가뿐하게 누......ㅂ지 못했다. 온몸이 땡긴다. 뻣뻣하고 아프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으~’또는 ‘허~ㅂ’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낑낑대다 어느 틈에 잠이 들었다. 새벽 알람에 눈을 떴다. 일어나려는데 이곳은 지구가 아닌 것 같다. 마치 목성쯤 되는 행성에 있는 듯. 몸이 두 세배 정도 무겁다.


    하루 종일 몸이 물젖은 솜 같았지만 운동통은 운동으로 풀어야 한다는 지론을 바탕으로 저녁 달리기에 대한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었음을 굳이 부인하지는 않으련다.

    저녁 여섯 시 삼십칠 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잔 할까?’ 반가웠다. 남자라면 자신의 건강보다 친구의 정신 건강을 더 중시해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유붕자원방래 불역열호..


    토요일은 바빴다. 일도 많았고(근데 뭐했지?), 약속도 있었고(유붕자원방래 too). 주일은 안식일로 경건하게 지켜야 하기에 애당초 뛰거나 하는 날이 아니다. 대신 회의를 길게 했다.  

  

    마침내 런닝 결심 후 두 번째 주. 오늘은 대체공휴일이고 지난 며칠 쉬었으니 여유를 갖고 마음을 다잡아 제대로 운동하자. 본격적으로 Runner의 궤도에 오를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내일있을 회의자료를 준비하다가 눈이 침침해 바깥 공기를 쐬려 문을 열었다. 

    "어, 어, 비온다."

    날씨 정보 앱을 열었다. 머피의 법칙.       

    나는 운동을 하기로 했다.

                                                                                         (2021.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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