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치혜 Aug 26. 2023

슬픔 잊기


   제천은 작고, 뜨거운 태양볕 아래 노출된 나른한 거리는 외로워 보입니다. 여기저기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지만 도시를 걷고, 의림지를 한 바퀴 돌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십니다. ‘관광이 아니고 여행이라고’하는 기분에 마음이 차분하고 머리는 맑습니다. 어제 모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기억력이 좋고 상황에 대한 판단과 이해가 빠릅니다. 섬세하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합니다. 이해와 공감과 사랑에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른 감정들을 아우르고 빛내줍니다. 마음을 성장하고 성숙하게 해줍니다. 아마도 기쁨보다 늦게 태어났을 것입니다. 슬픔의 이야기입니다.


   기쁨은 금세 잊힙니다. 아름다운 기억은 쉬 색바랩니다. 노함은 불같이 타올랐다가 가라앉습니다. 가라앉아야 하지요, 살기 위하여. 

   슬픔은 잠복합니다. 마치 잊힌 것 같지만 마음의 심층에 침잠합니다. 필요한 때에 언제든지 슬픔은 얼굴을 바꿔 우리 곁에 드러납니다. 때로는 위로하는 슬픔으로, 때로는 감정의 파도를 격랑으로 만드는 슬픔으로, 때로는 공감해 주는 슬픔으로, 그리고 기쁨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촉매제로서의 슬픔으로. 우리는 위로를 받기 위해, 더 기쁘기 위해, 한 뼘 더 자라나기 위해 깊게 잠긴 슬픔을 불러내고는 합니다. 그래서 슬픔은 잊히지 않습니다. 


   슬픔과 잘 어울려 살아가려면 어찌 해야 할까요. 왕도가 있을까요?

   사람들과 어울려라, 일에 몰두하라, 여행을 가라, 새로운 취미와 관심을 개발하라, 운동을 해라, 일정 기간 몸을 피곤하게 해서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환경을 만들어라, 등등... 인터넷을 보거나 주위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무척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백인백색일테니까요.


   사랑의 상처는 사랑으로 이긴다라고 농담처럼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의하면 맞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슬픔도 같은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단, 자신에게 특정된 슬픈 감정이나 상황을 통해서가 아닌 순수한 슬픔의 정수를 통해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선천적으로 타고난 측은지심, 보살피고 공감하고 애틋해하고 안타까워하는 보편적이고 순수한 슬픔 말입니다. 

   "우동 한 그릇","오세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이야기를 읽었을 때 가슴 속에서 아련히 차오르는 맑은 눈물 같은 슬픔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 주면, 슬픔의 특징 중 하나인 '마음이 성장하기'가 될 것입니다. 그 슬픔으로 내 슬픔을 위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민복 시인이나 한하운 시인의 아름다운 슬픔을 가슴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슬픔으로 바닥을 치고 그로써 어울려보는 거지요.


   많은 유명한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추천하네요. 감정을 단속하고 꾸미면서 말하는 것 말고 지금의 솔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말하는 것만 가지고도 무척 차분해지고 자신의 슬픔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쓰면 더욱 좋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글은 말하는 것보다 우리를 정연하게 해주고, 되새겨 볼 수 있으니까요.


   육체의 이별이 있고 정신적인 이별이 있습니다. 사람이 겪는 슬픔 중에 가장 크고 깊은 슬픔 중의 하나는 사별일 것입니다. 어른들께 들은 이야기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고 나면 반드시 한 번은 죽은 이가 꿈으로 찾아온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슬픔과 함께 잘 살아가도록 돕기 위한 섭리일까요? 생전에 지극한 정성과 사랑을 기울였다가 떠나 보내 슬픔이 깊은 사람일수록 꿈에서 찾아온 죽은 이는 냉정하거나, 다른 사람 같거나, 심지어는 무서울 수도 있답니다. 이른바 정 끊기입니다. 세상에 홀로 남은 사랑하는 이가 잘 이겨내고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죽은 이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슬픔에 맡겨봅시다. 크고 깊은 슬픔에 눈물도 흘리고 그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해야겠지요.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거든요, 사람은. 조급하게 극복하려 하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몸에 힘을 뺀채 말하고, 쓰고, 읽고, 순수한 슬픔을 느끼며 기다리는 겁니다. 나의 큰 슬픔의 대상이 나를 찾아와 슬픔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때까지.


   슬픔이여 안녕! 


   Bye 가 아니라 Hi...




작가의 이전글 인류세(人類世). "Where are Yoo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