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과 수치심
“난 결혼하고 좋은 건 남편보다 시어머님 시아버님이 생겼다는 거야 두 분 너무 좋으셔”
나보다 일 년 일찍 결혼한 교회 언니(이제는 형님)의 결혼 한 달 후기였다. 나의 가까운 미래의 시부모님이 되실 분들이기에 마침 궁금했던 터였고 그날따라 그 말이 유독 가슴에 새겨졌다. 부러웠던 것일까.. 이른 질투심이었을까..
형님에게서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데 몇 달 뒤 유산 소식도 들려왔다. 그리고 내가 일 년 뒤에 결혼을 했고 어쩌다 보니 더 먼저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어쩌다 보니’가 아니다. 신혼을 즐기고 싶다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아주 계획 하에 서둘러 임신을 준비하였고 계획에 성공을 했다. 첫 손주, 아들을 제일 먼저 안겨드리고 싶다는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첫 손주..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욕망이 불러일으킬 미래들은 밝지 않았다.
나는 출산을 했고 형님도 3달 뒤에 아들을 출산하였다. 그런데 나의 기대와 예상과는 다르게 시어머님은 나의 아이보다 형님의 아이를 더 챙기셨다. 공평하지 않으셨고 편애가 심했다. 나에게 첫 조카.. 당시 질투심 어린 내 눈초리에는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신생아의 통통한 젖살도 하나 없었고 팔다리는 삐쩍 말라서는 머리카락 하나 없는 꼭 절의 동자승 같았다. 우주복을 입고 허우적대는데 귀엽지도 않고 들판에 허수아비 같아 보였다. 다 같이 교회를 가면 어머님은 조카만 데리고 한동안 사라지셨고 교인들에게 자랑하러 다니셨다고 했다. 설 명절에도 조카를 안고 마을을 다니며 동네방네 장손이라고 소문내고 다니셨다. 내 아이의 존재가 무색하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둘째를 출산하고 두 달 차이로 형님도 둘째를 낳았는데 내 눈에 기억은 어머님은 그 아이를 품에서 내려놓지를 않으셨다. 더 어려서 그렇다고 하셨다. 두 달 차이로 우리 둘째는 큰아이가 되었다. 둘째의 돌잔치 날 어머님이 생일 주인공이라며 둘째를 안고 다니셨는데 그게 태어나서 처음 안긴 모습이었다. 그 덕분에 둘째 돌 사진에 하나도 빠짐없이 어머님이 등장하신다. 그래서 우리 네 식구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어머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나의 시기심과 질투심에 불을 붙이셨고 대놓고 불합리하다고 말 못 하는 나는 시댁을 다녀오는 길에 꼭 부부싸움을 하였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조용히 숨겨진 나만의 감정 고부갈등으로 우리 부부는 점점 지쳐갔다.
상처는 곪고 고름이 생기면 터지기 마련이다. 그날 나도 터졌다.
“니들 형네 집 분양이 돼서 돈 걱정 하길래 내가 1억 2천 줬다.”
허걱.. 나는 돈 천만 원도 받은 게 없는데 1어억.. 에다가 2천을... 주시다니.. 그 몇년간 편애가 느껴지고 아프고 힘들때마다 남편은 절대 아니라고 했는데.. 오버하지 말라고 손주가 어떻게 안 예쁠 수가 있냐고 했는데.. 맞았다. 맞다고 도장 쾅쾅 찍으셨다. 너무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에 혹시 우리 것도 주시려나 살짝 기대를 하려던 찰나, 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내가 살던 집 빼주고 돈 준거라 너희 집에 몇 달 살아야겠다”
한방 맞아서 비틀거리는데 재정비도 하기 전에 K.O. 를 날리셨다. 나는 녹다운된 상태로 집에 왔고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며칠 뒤 어머님은 큰 비닐에 옷이며 신발 등 짐을 한가득 넣어 들고 오셨다.. 큰아들에게 다 주고 가방도 없으셨나.. 비닐에 가져오셨다. 그동안 단단히 걸어 잠겄던 마음속에 상처와 분노, 섭섭함이 그날 고름과 함께 터져 나왔다. 나는 무례했다. 내 부모, 아니 어떤 어른에게도 큰소리쳐 본 적이 없는 내가 시부모님한테 무례하게 소리쳤다. 내가 그렇게 방방 뛰는데 어머님은 침착하셨다. 연신 “아가야.. 내가 잘 몰랐다.”라고 하셨다. 진짜 모르시는 표정이었다. (어머님의 장점은 매우 솔직하시고 주변 눈치를 보지 않으신다는 거다.) 신랑도 옆에 앉아 있었다. 내 옆에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내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본인 부모에게 무례하게 하는데도 화내지 않았다.
새벽까지 나는 고름을 다 토해내고서 끝이 났고 그날의 긴 서사가 지나갔다.
지금은 제일 예쁜 첫째 조카이다. 참 대화하면 공감이 잘되는 조카이다. 싫어했지만 너무 미워했었지만.. 나도 세월에 무뎌지기도 했고 참 착하고 반듯하게 커서 안 예뻐할 수가 없는 존재이다.
여전히 나는 어른 아이이다. 시기심과 질투심이 가득하다. 그냥 불편하고 좋지 않은 것은 감추고 덜 들키고 있을 뿐 아직도 내속에는 아이가 들어있다. 시부모님에 대한 미움을 전화를 덜 하는 것으로, 용돈을 친정보다 덜 드리는 것으로 나만의 소심한 복수를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나의 질투심에서 시작된 불편한 욕망(첫 손주.. 사랑의 독차지)은 녹록지 않게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았다. 왜 드라마의 결말도 항상 내 스토리와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는가. 질투의 화신 민소희처럼 점만 안 찍었을 뿐.. ‘너는 나를 만나서~ ♪’
이젠 짠한거 말고 새로운 해피엔딩의 드라마를 써 내려가고싶다. 남은 새 삶의 드라마.. 우선 제목만 지어보았다.
‘어른 아이여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