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흐름에 몸을 맡기다.
"네가 뮤지컬 배우를 하겠다고?
춤도 못 추고 노래도 못하면서... 정신 차려."
타고난 몸치에 노래도 별로인
비전공자 학생이 뮤지컬배우를 하겠다고 설치니
주변에서 그런 반응이 쏟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반응에 반발이라도 하듯,
나의 20대는 하루빨리 무엇이든 보여주고
증명해야 한다는 욕구로 가득 차 있었다.
운 좋게(?) 작품 몇 개를 하고
배우라는 타이틀은 얻었지만,
정작 나는 스스로를 믿는 본질적인 힘이 없었다.
겉은 분주한데 속은 텅 비어있는 사람.
늦게 시작했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기술적인 정답만 찾아 헤매고,
보여주기에만 급급했던 사람.
내 본연의 결보다 남의 기준에 더 흔들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좋아서 시작했던 춤과 노래는
어느새 트라우마로 변해버렸고,
그 과정에서 나는 본질을 잃어갔다.
결국 나는, 너무나 사랑했고 내 청춘을 고스란히 받쳤던 그 꿈을 포기했다.
그리고 나를 찾겠다며 이곳으로 도망치듯 떠나왔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
누군가에게 증명받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비로소 나를 숨 쉬게 했다.
바다는 내게 천천히 가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그 너른 숨결에 몸을 얹다 보니
내면의 리듬도 조금씩 풀려났다.
정서가 흐르는 대로, 나는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답을 향해 다듬어진 멋진 춤이 아닌,
투박하더라도 본연의 정서가 이끄는
나만의 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보다 원초적이고 근원적인표현의 수단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 있어 춤은 정서가 흐르는 길이며
그 길에 막힘이 없을 때의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스며들자,
문득, 다시 무대가 그리워졌다.
보이기 위한 기술들을 수행하느라
다시 여유를 잃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이 바다의 흐름을, 내면의 파도를,
느리지만 깊은 그 숨결을 기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