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작, dmz 피스트레인에 대하여
‘미래를 창조하기에 꿈만큼 좋은 것은 없다. 오늘의 유토피아가 내일 현실이 될 수 있다.‘ -빅토르 위고
인용으로 시작하는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만큼은 그렇게 쓰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에겐 유치할 정도로 당연하게 느껴지는 문장들은 사실 진리를 담고 있다.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아득한 그 진리를 체감시키기 위해 예술은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고.
그리고 이 페스티벌을 다녀오며 느낀 것이 너무나 당연한 진리와 맞닿아 있어서, 익히 들어 알고 있을 ‘명언’따위를 인용하며 시작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원래 모든 공연은 어느 정도 꿈결 같은 구석이 있다. 특히 록 페스티벌은 더 그렇다. 하루 온종일을 폭발하는 밴드 사운드 아래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보내며, 처음 보는 이들의 아이 같은 표정에 취해 울고 웃고 춤추고 소리 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대낮의 비눗방울과 흩날리는 깃발부터, 쌀쌀하고 까만 밤의 날카로운 기타 리프, 광란의 슬램까지. 조금 어설퍼서 더 자연스러운 사람들도, 음악 하나로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미친 듯이 춤추는 사람들도,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표정, 그리고 밴드부터 관객까지 누구 하나 웃지 않는 이가 없는 분위기도, 모두 우리가 늘 꿈꾸는 ‘자유’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우린 능력이 하나 생긴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오직 현재의 가치와 행복만을 있는 힘껏 체득하는 것 말이다. 그런 순간이 모이면 자연스레 후회와 두려움이 싹 걷히게 된다.
공연의 꿈결 같은 지점은 또 있다. 함께 겪는 모든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 오직 그 순간 단 하나뿐이라는 것.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렬한 순간들을 모두가 같은 감정의 크기로 느끼고 온다는 것. 마지막으로 일시 정지를 누를 수 없는 폭죽과도 같은 충격에 정확한 기억이 어렵다는 점에서도 꿈과 흡사하다.
공연을 보고 올 때마다 매번 몽롱하고 애틋한 꿈을 안고 돌아오지만 이번엔 그 꿈의 궤가 조금 달랐다. ‘정말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을 목격한 느낌이었다. 누군가 유토피아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내가 보고 왔다고 주장할 수 있을 정도의 감각이었으니. 그렇다면 유독 이 작은 페스티벌에 열광하는 이유를 서술하기 위해, 일단은 회상부터 해보겠다.
도심과 한참 떨어진 곳에 있으니 셔틀버스를 타고 간다.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본인이 다녀온 공연의 머천다이즈 티셔츠나 슬로건을 든 채 버스에 올라탄다. 웅성웅성, 라인업 이야기나 그날 먹을 음식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버스가 출발하면 잠에 빠져든다. 그러다 하나둘 깨어나는 시점에는 어느덧 철원에 들어서고 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창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버스는 고석정에 도착한다. 수학여행에 도착한 중학생들처럼 우르르 내리고 나면 여름 한낮의 더위가 기다리고 있고, 길고 긴 입장줄을 거쳐 부지 안으로 들어가고 나면 아직 진초록이 되지 않은 울창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스테이지가 보인다.
공연 시작 전, 사람들은 분수대에서 춤을 추며 물을 흠뻑 맞고 젖은 옷을 쥐어짜며 맥주를 사러 걸어간다. 혹은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고석정 물가에 발을 담그고 오기도 한다. 도심과 한참 떨어진 자연 속에 격리된 듯한 우리는 누구보다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이곳저곳을 쏘다닌다. 더위가 신경 쓰이지 않기란 아주 어려운 일인데도, 모두가 짓는 표정에 취해 더위마저 소중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첫 무대가 시작되면 술이든 음악이든 그 무엇에라도 취해 있는 사람들이 뛰고 구르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어떤 페스티벌에서보다 격렬하게)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러니 여기가 현실에 없는 공간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는 길, 도착해서 보이는 풍경, 스치는 사람들, 줄 세워지지 않은 라인업까지. 몽롱하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꿈이 되어 남도록 설계된 것 마냥, 부지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행복에 젖어 있다. 오직 현재의 행복, 살아 있음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내내 웃고 소리 지르며 뛰던 사람들은 물을 온몸에 끼얹거나 술을 머금고 돌아온다. 그리곤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이 꿈은 반복된다. 조명에 비친 푸른 나무들에 둘러싸여 꾸는 한 여름밤의 꿈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런 순간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간절하고 아득해서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았을 뿐, 사랑과 평화와 자유가 깃든 이런 순간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다녀오면 이런 것들을 알게 된다. 내가, 인간이 무엇을 원하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지난해 부산에 다녀오면서 쓴 일기에는 ‘어제가 후회스럽지 않고 다가올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다.’라는 구절이 적혀있다. 만족스러운 공연이나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생각은 생각으로만 뭉게뭉게 떠다니지 않고 완벽한 내 몸이 되어 실체로 존재하게 되었다. 정성스레 꼭꼭 씹어 삼킨 것처럼. 덕분에 다가오는 현실을 무던하게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이 나에게도 생겼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총체 같은 그 하루 덕분에 내일이 두렵지 않을뿐더러, ‘미래‘라는 미지의 세계도 두 팔 벌려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 오늘의 유토피아가 내일 현실이 되는 ‘ 그 경험을 사실은 여러 차례 해왔다는 것을 뇌로,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게 해 준 하루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릴 때는 그토록 싫어하던 여름을 이젠 사랑하게 되었다. 귀가 찢어질 듯 매미가 우는 여름밤도, 장대비 속에 진해지는 나무들도, 심지어 눈부신 해가 내리 쬐어 이글거리는 아스팔트마저도.
다신 겪을 수 없는 순간들을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난 후, 나는 나의 인간상이 무엇인지를 안다.
빙하기가 찾아온대도 여름을 꿈꾸며 깃발을 휘날릴 수 있는 사람. 난 언제까지나 그런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올해 여름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