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아보니

by 하와이 앤

지난해 가을, 비누 모양의 샴푸를 보고 신기해서 하나 구입 했다. 평소엔 액체형 샴푸만 써왔기에 고체 샴푸는 처음이었다. 붉은색의 장미향이 나는 샴푸 비누를 머리에 대고 문지르면 거품도 잘 일어나고, 향도 좋아서 이 비누가 아주 사랑스러웠다.


이 사랑스러운 비누를 남편이 쓸까 봐 남편에게 말했다.


"00 아빠, 이 비누 내 거니까 쓰면 안 돼. 알았지?"


남편이 서운해할 줄 알았는데, 샴푸 비누엔 관심 없다는 듯 말했다.

"걱정 마. 난 세숫비누로 머리 감아."


남편이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예전에 머리 가려움 때문에 남편을 위한 샴푸가 따로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찾지 않길래 그냥 집에 있는 샴푸를 쓰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남편이 이어서 말했다.

"세숫비누로 감으니까 너무 좋아. 이 세숫비누가 아주 좋은 것 같아. 냄새도 좋고, 머리 가려움도 없어졌고 아주 좋아. 마눌도 한 번 세숫비누로 감아봐"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는다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그래, 00 아빠는 당신 좋아하는 세숫비누로 머리 많이 감아." 말하며 지나간 적이 있다.


이 사랑스러운 샴푸 비누를 사용하면 할수록 점점 더 좋아하게 됐다. 거품도 잘 나고, 향기롭고, 다 쓰고 나서도 쓰레기도 안 생기고, 공간도 적게 차지하지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계속 쓰다 보니 결국 조각조각 부서졌다. 계속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새로 사고 싶었지만 이 조그마한 비누 하나에 돈을 쓰기가 아까웠다.


그 순간 문득 예전에 남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으니 너무 좋아'


그래 샴푸비누나 세숫비누나 똑같은 비누니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아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아침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아보았다. 같은 비누니 비슷하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머릿결이 뻣뻣하고 푸석했다. 머리 린스도 하고 헤어 에센스도 발랐지만 소용없었다.


오늘 아침엔 샴푸를 이용해 머리를 다시 감았다. 부드럽게 정돈되는 머릿결이 마음에 들었다.

잠에서 깬 남편에게 물었다.

"아니, 세숫비누로 감으니까 아주 좋다며. 난 아니던데."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비누칠 한 번 하고 헹군 다음, 한 번 더 비누칠을 해서 감아야지"


"그래, 두 번 비누칠을 해야 되는 거야. 난 그냥 샴푸로 감을래."


세숫비누로 감아보니 남편이 느낀 '기분 좋음'을 나는 느낄 수 없었다. 어릴 적 빨랫비누로 머리 감던 시절이 잠깐 떠오르긴 했지만, 샴푸의 맛에 빠져버렸다. 아직 난 샴푸로 감아야 할 듯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욕실 바닥을 청소하다 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