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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자씨 Nov 18. 2021

육아의 현실

도대체 무엇이 힘든것인가.







아기가 7개월이 되었다.

정말 하루하루 다르다더니 오전 다르고 오후가 다를 만큼 쑥쑥 크고

사물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호기심도 생기고 움직임도 활발해졌는데 이 어미는 도대체 체력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알 수가 없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시판의 유혹을 뿌리치고 재료를 하나하나 손질하고 다지고 얼려서 3일에 한 번씩 새로운 재료를 첨가해 만들고 있다.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 힘들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뭐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남은 재료로 우리 먹을 것도 만들면 되겠지 싶어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비웃고 있지


육아 선배들의 고충이 괜히 흘러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


도대체 육아란 무엇일까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50일이 되기도 전에 통잠을 잤고 많이 울거나 보채지도 않았다 어른들이  거저 키운다고 하셨다. 물론 처음 들었을   그래도 힘든데 하며 서운하다가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짜 키우기 수월해 금세 맞다며 끄덕거렸다. 지금도 남자아이라 힘이 좋긴 하지만 떼쓰고 투정이 있다거나 잘 먹지 않는 아기들에 비해서 정말 순하고 키우기 쉽다고 생각했다.


근데 힘들다

이게 참 모순이다 이렇게 순한 아기인데 난 왜 힘들까


친정이 지방에 있어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시댁도 멀어 자주 와주실 수가 없다.

그래도 주말에 한 번씩 와주셔서 아이 봐주시면 남편이랑 둘이 나가 데이트도 한다.

낮에 아이를 보고 있지만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오면 잘 봐준다

낮에 남편도 회사서 스트레스받아가며 일하고 들어와서 또 아이를 보니 사실 내가 독박 육아라고 할 수도 없다 독박 육아는 낮에도 보고 밤에 남편이 도와주지 않는 게 독박 육아가 아닌가


그러니까 독박 육아도 아니고 아이도 순한데 도대체 왜 힘들고 지칠까


나도 회사 생활을 해봤다.

일 못하는 직장상사 밑에서 허드레일 다 하며 나 언젠가 이 회사 때려치운다며 수도 없이 다짐하던 날들도 있었고 같이 일하는 동료가 뒤에서 내 욕을 엄청나게 까대고 돌아다녀 몇 날 며칠을 충격에서 나올 수 없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나라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내 이름보다는 엄마라는 타이틀이 마치 내 이름인 것 같고 나의 색깔은 점점 희미해진다. 직장을 다니며 가졌던 책임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책임감이 어깨를 누른다. 아빠들이 가지는 가장의 책임감과 또 다르게 엄마로서 가지는 마음이 있다.


아이들이 커갈 때 부모가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는가에 따라 아이의 성장이 달라진다.

그러니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선 내 지식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이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정보의 늪에서 찾고 또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정보들이 옳은 것인지 수없는 갈래길에 서서 고민하고 선택한다. 혹시라도 잘못된 선택이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하루의 일과는 아침에 아이의 밥을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놀아주는 게 한 타임인데 하루에 밥을 5번 먹으니 5번만 하면 된다. 근데 여기에서 어질러진 방을 치우고 정리한다. 괜찮을 것 같으면 이유식을 만들려고 도전하지만 곧 실패.

중간중간 빨래도 돌리고 젖병 씻고 이제 낮잠 타임이니 재우려 치면 요즘 들어 칭얼이란걸 습득한 것인지 졸리지만 안 자겠다는 아들을 달랜다. 겨우 잠들면 커피 한잔 마시며 숨좀 돌리려다가 아 맞다 싶어 이유식 재료 주문하고 아까 못 찾은 것들을 찾아본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집이 엉망이다 분명 나는 치웠는데 왜 어질러져 있지 싶은데 제대로 하는 게 없구나 싶어 또 마음이 울적해지고 행여 오늘 하루 아이에게 소홀하거나 조금이라도 큰소리를 냈다면 못난 어미가 된 것 같아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렇다고 온전히 아이에게만 빠져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이가 놀 때 옆에서 나도 핸드폰으로 인스타도 하고 한쪽으로 이어폰 끼고 드라마 틀어놓은 채 보고 있다.

참 아이러니 한건 이렇게 하고 나면 또 죄책감이 든다는 게 문제다.


결국 육아가 힘든 것은 반복적이지만 티가 나지 않는 현실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 수도 없는 정보들 그리고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나 자신. 그리고 갖지 못하는 나만의 시간.

아이와 내 가정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등등이 아닐까.


아이가 태어나고 한 번도 내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도 주말에 밖에 나가 콧바람 좀 쐬고 나면 몇 주일이 괜찮았는데 육아에도 번아웃이 있나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느낌

그래도 낮에 한 번씩 아기랑 같이 동네 커피숍에 커피 한잔 테이크아웃하는 게 낙이 었는데

큰맘 먹고 다녀온 여행에 감기를 가지고 돌아왔고 날이 추워져 밖에 나가는 건 엄두도 못 냈다.


쌓이는 마음이 커지니 저녁쯤 되면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늘 한 거에 비해 뭐가 제대로 된 게 없으니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있나? 이 정도면 힘들지 않은 게 아닌가 아니다 힘들다로 혼자 감정싸움을 하며 육퇴 후 한잔에 에라이 모르겠다 하는 날들이 이어졌는데, 엊그제는 갑자기 말똥말똥 해진 눈망울로 잠에서 깬 아들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울상이 되었다. 언제 자나 싶은 생각에 한껏 힘들다고 징징거리니 출근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해서 이제 잘 준비하는 남편은 니가 좀 다해라고 돌려 까는 것처럼 들렸는지 기분이 상한 게 보였다. 아무 소리 안 하고 그날은 넘어갔지만 결국 다음날 대차게 싸웠다.


육아를 하며 부부끼리 많이 다투게 되는데

각자 생각하는 육아의 방식이 있고 그걸 맞춰나가야 하며 한쪽이 지지 않으면 결국 논쟁과 논쟁을 거쳐야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 다 힘든 하루하루들을 보내고 있으니 결국 예민함이 끝을 달린다.


이렇게 뒤죽박죽 되어 있는 현실들 때문에 결국 육아가 힘들다고 하는 거겠지.


아이를 보면서 오늘도 생각한다.

내가 제일 잘한 일은 결혼을 하고, 우리 아이를 낳은 것. 그리고 이렇게 키우는 것이라고.

어미도 처음이라 힘이 들지만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미안하다고


그래도 이렇게 힘들어도 아이가 돌이 되면 아이를 위해 둘째를 계획했었는데,

어젠 아들의 귀에 속삭였다.

미안해 넌 이제 외동이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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