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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자씨 Apr 04. 2021

03. 엄마, 나 임신했어

내가 엄마라니






임신을 확인한 후부터 모든 생활에 조심성을 더 했다. 비록 초음파로 아직 확인은 못했지만 아랫배 어딘가 자리를 잡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모든 게 다 신경이 쓰였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뀐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병원 방문까지 임테기라는 늪에 빠지게 되었다. 너무 초기에 알게 된 임신이었고 초음파로 확인도 못했기 때문에 아이가 잘 있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임테기에 의지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일상 속에서 늘 있었던 일인마냥 아침, 저녁으로 임테기를 했고 임신선이 날로 진해지는 것을 보며 안심했다.


그렇게 2주 뒤 기다리고 기다리던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했다


아기집을 확인하고 나니 아랫배에 더 많은 신경이 쓰이면서도 배가 나오거나 특별한 변화가 없으니 정말 임신을 한 건가 깜빡할 때가 있었는데 그런 날 혼내기라도 하듯 곧바로 찾아온 임신 증상으로 본격적인 임산부의 삶이 시작되었다.






어릴  할머니와 살았던 나는 할머니의 부족함 없는 사랑을 받았음에도 마음속 깊이에는 부모의 사랑이 그리웠던  같다.

그리고 그러한 그리움의 감정은 부모에 대한 아이의 본능적인 감정이지 않았나 싶다.

부모의 부재, 그리고 나에 대한 관심이 적었음에도 호기롭게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마음 한켠, 아주 깊은 곳에 작은 방을 만들어 그곳에서 늘 부모님을 향한 대한 기대와 의지의 싹을 키워왔다.


사실은 그런 마음이었다고 한들 결국 그것들은 숨겨둔 감정일 뿐이니 알아챌 수 없었을 것이고 결국에 나에게 찾아오는 것은 상상과 다른 현실들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찌 부모가 자식에게 아예 관심이 없을 수 있을까. 사는 게 팍팍해서 미처 자식까지 돌보지 못했을 거라 생각은 하지만, 그 어린 내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아니다, 다시 솔직하게 말하자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지금에도 이해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릴 적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부족했거나, 가정이 평탄하지 않았거나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 성인이 된 후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은 절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과 반대로 그런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에 얼른 결혼을 하여 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려 안정된 삶을 원하는 경우를 봤었는데 나는 후자였다.


되도록 빨리 결혼하여 아이를 가지고 안정적인 울타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아내와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기 전까지 결혼에 대한 기대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컸었다.


그래서인지 결혼 전부터 아이를 가지게 되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자주 하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키워야 할지에 대한 주제를 많이 꺼내 놓기도 하였고, 임신이 되는 과정, 출산을 하는 과정들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임신을 하는 동안에도 잘 넘어갈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주 대단한 착각이었다.

역시 모든 것은 겪어봐야 안다.






워낙 감성적이고 눈물이 많은 나는 출산 이후 호르몬에 의해 산후우울증이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어 출산 후에 산후우울증이 오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었다. 산후우울증에 대한 심각성이 높다는 얘기가 많다 보니 임신 후에도 호르몬 변화로 감정 기복이 생긴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건 착각의 시작이었다  


임신을 하고 난 뒤에 찾아오는 증상들은 왜 도대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며 임신 후기가 이렇게 적은 것인가에 대해 원망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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