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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Oct 24. 2024

돌아보면

불심을 깨우다

  공방으로 들어서니 길게 누운 불화(佛畫)들이 나를 맞는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수문장처럼 마주 본다. 아미타회가 그려진 후불탱화와 호법신을 묘사한 신중탱화가 게으름을 피우며 바닥에 뒹군다. 오백나한의 이야기는 끝이 없고 석가모니불의 영취산에서의 설법 장면이 그려진 영산회상도가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다. 

  문경 하늘재 골짜기에서 경북 무형문화재 제39호 김종섭 불화장(佛畫匠)을 만난다. 장인에게 관음불교미술연구원은 불화를 그리는 공방이요 불화의 맥을 이어주는 공간이다. 흩어진 마음을 다잡는 기도처요, 힘이 들어 쉬는 삶의 쉼터이다. 

  붓 통마다 백여 자루의 붓이 꽂혀있다. 걸려있는 붓도 바닥의 붓도 장인을 기다린다. 풀칠하는 면이 넓은 붓도 있지만 작은 붓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장인이 가는 길을 작은 붓도 종종걸음을 치며 따라간다. 장인이 일할 때도 쉴 때도 함께한다. 붓은 어느새 장인의 그림자가 된다. 

  그림은 돌을 찾아 나서는 일에서 시작된다. 색깔이 좋으면 작은 돌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돌을 든 장인의 입가에 미소가 돈다. 돌을 씻고 같은 색을 모아 기계에 넣고 간격을 좁혀가며 돌을 간다. 씻을수록 선명해지고 갈수록 작아지고 장인의 바람은 커진다. 가루를 모아 채질 하는 장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가루의 은은한 빛깔이 작업장에 번진다. 곳간을 가득 채운 농부처럼 장인의 마음이 부르다. 

  그릴 때마다 몸을 씻고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는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무릎을 꿇고 앉는다. 깨끗한 몸가짐과 단정한 옷차림에 말이 없다. 스님이 되어도 환속을 하여도 기도하고 자신을 닦는 삶의 모습은 바뀌지 않는다. 불화를 통하여 부처에게 다가가는 간결한 몸가짐은 그대로이다. 

  붓을 잡으면 그림과 하나가 된다. 정신을 모아 선을 그으면 시간도 정지한 듯 머문다. 주위는 고요하고 새 한 마리 울지 않는다. 마당의 개는 선 긋는 소리를 쫓느라 귀를 쫑긋 세운다. 손은 리듬에 맞추어 점을 찍고 선을 긋고 면을 칠한다. 한 점 한 점 찍어나가는 흰 점이 입체감을 더한다. 검은 선으로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처의 몸. 상호에 마지막으로 점을 찍는다. 부처님이 번쩍 눈을 뜬다. 

  장인이라도 마음 씀에 따라 상호는 다르게 그려진다. 불화에서 상호가 중요하다는 장인은 법당에 올라가 기도를 드린다. 기도가 받아들여지면 부처님의 얼굴을 그린다. 수십 년을 그려도 상호는 그릴 때의 마음이 반추되어 나타난다. 그릴 때마다 얼굴이 다르다고 말하는 장인이 눈을 크게 뜬다. 

  손이 떨리거나 힘이 들어갈 때, 몸을 씻고 법당으로 간다. 절을 올리고 앉아 한참 참선에 든다. 시간이 흐르면 손끝이 가벼워진다. 불화를 그리는 일에 몸과 마음은 두 개가 아니다. 몸이 마음을 따르고 마음은 몸을 따라서 나아간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붓끝에 부처님이 담긴다.

  돈을 생각하면 한낱 그림에 불과하다. 물욕이 눈앞을 가리면 부처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굳게 믿는 마음이 있어 불화를 그린다. 애착도 있지만, 사십여 년 한결같이 붓을 잡게 한 힘이 따로 있다. 소원을 이루어달라는 기원은 아니다. 남북통일 같은 거창한 발원도 아니다. 부처를 통해 중생을 깨워야 한다는 사명감이다.

  산업 사회의 압축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 짧은 기간에 이룬 부(富)에 익숙하여 정상적인 돈의 흐름에는 만족을 모른다. 기회를 틈타서 큰 이익을 얻으려 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부동산 불패의 믿음이 단단히 자리한다. 늘 한몫 챙기려고 생각한다. 투기의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물욕에 가까이 서 있는 한 부처를 만나기는 힘든다.

  월등한 세력으로 꼼짝 못 하게 누른다. 쉽게 고르고, 함부로 다루고, 그냥 내보낸다. 돈을 주면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려 한다. 한 줌의 권력을 행사하느라 주위를 돌아보지 못한다. 사람을 막 대하느라 머리 위의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한다. 부처와는 멀리 떨어진 별에 산다. 

    상대방에게 중상모략을 일삼고, 공천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칼자루를 쥔 자에게는 굽신 굽신한다. 공천에서 탈락하면 다시 모인다. 그들에게 굳은 마음은 찾기 힘이 든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부처의 가르침은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인간에게 불성이란 도덕, 지성, 교양이 아니다. 마음을 부처답게 가지는 일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불성을 만날 수 있다. 불쌍히 보고 높이 보고 너그럽게 보는 마음만 간직하고 있다면. 

“부처님 되세요.”

장인이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넨다. 장인은 불심을 그리고 중생은 부처의 마음을 읽으며 자신에게 내재된 불성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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