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터, 새 길을 열다
역사 속 물길을 통한 대구의 관문이요 낙동강과 금호강이 모이는 사문진 나루터로 간다. 삶에 지칠 때 도심에 가까운 휴양지, 보부상들이 피곤한 몸과 짐보따리를 풀듯 나를 내려놓는다.
뱃길은 상주에서 시작하여 사문진을 거쳐 부산까지 이어졌다. 영남의 물류 운송 중심지인 사문진은 두 개의 강과 하천이 만나는 해산물과 농산물의 이동 통로였다. 수심이 얕을 때는 사공들이 물에 들어가 멜빵으로 배를 끌었고, 수심이 깊을 때는 돛단배를 이용하였다. 소금배와 청어배는 낙동강 상류로 향하고, 농산물을 실은 배는 하류로 갔다. 나루터가 있는 곳마다 배를 묶어놓고 손님들을 모았다. 서민의 삶일수록 소금은 더 필요했고, 청어는 돈 있는 양반들의 구매품목이었다. 보부상은 깊은 골짜기까지 물건을 팔러 다녔다.
강 건너 오일장을 보러 갈 때는 나룻배는 온종일 손님을 실어 날랐다. 집에서 키운 농산물과 수탉을 팔기 위해 배에 올랐다. 아낙네는 좋은 가격을 받기 위해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서 손님을 기다렸다. 없는 살림에도 물건을 팔 때는 덤을 주기도 했다. 임자가 없어 물건을 도로 싣고 올 때는 다음 장날을 기약해야 했다.
강 건너로 딸을 시집보낸 늙은 아비는 딸의 소식을 들으려고 나룻배를 탔다. 중매한 친구를 만나 매운 시집살이하는 딸의 서러움을 전해 듣고 막걸리 한 잔으로 응어리진 마음을 달랬다. 술김에 딸을 시집보낸 자신을 자책하며 처진 어깨로 나룻배를 탔다. 이튿날 아비는 잘 있다고 인편으로 안부를 전했다.
배를 묶었던 오백 년 된 팽나무는 아직 건재하다. 나무는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마을 지킴이로 알았다는 것과 험한 물길을 달려온 사공에게 휴식을 주었다고 자랑한다. 나물을 팔아 가족을 부양하는 아낙네와 허리가 휠 것처럼 짐을 진 보부상을 말한다. 배가 들면 물건을 사고팔았던 서민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낙동강은 물류 흐름의 중심이었고, 한국전쟁 때는 아군과 적군의 피를 묵묵히 받아내었다고 증언한다. 나는 가만히 듣기만 한다.
나루터를 지나 생태탐방로를 따라간다. 물 위의 데크는 편안함과 마음의 여유를 준다. 경치를 보느라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붉은빛의 하식애가 경치에 의미를 더한다. 순간 제갈공명의 적벽대전을 떠올린다. 세계적 희귀 수종인 모감주나무가 적벽을 따라 적과 대치하듯 비탈에 서 있다. 바위틈의 한 줌 흙에 뿌리를 묻고도 자신의 생존을 지킨다.
달성습지를 따라 노란 유채꽃이 줄지어 서고, 물에는 오리 떼가 한가로이 논다. 참새는 재잘거리며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개나리꽃, 싸리꽃,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느티나무의 연둣빛 잎이 화사하다. 달성습지에서 대명유수지로 발길을 옮기는데 장끼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서 갈대 사이로 몸을 숨긴다. 물억새의 마른 줄기 사이 물에서 오리가 먹이를 잡는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낙동강과 하늘. 온통 붉은빛이 사방으로 번진다. 파스텔톤의 노을빛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붉은 노을에 정신을 빼앗긴 강태공은 낚싯대를 들고만 있다. 사문진에 오면 낚시꾼은 노을에 찌를 내리고 사진작가는 노을을 낚는다. 노을은 강을 물들이다가 나중에는 강가에 선 사람들까지 붉게 물들인다. 모두 붉은빛 하나를 마음에 품는다.
강물은 역사처럼 흘러갔지만, 옛사람들의 애환과 정취는 곳곳에 남았다. 경치에 반한 신라왕이 아홉 번을 찾아 붙여진 구라리. 온통 꽃이 피어 얻은 이름 화원. 봉수대는 전망대로 바뀌었고, 내려오는 길에 상화대 십경을 읽는다. 낙동강의 돛단배, 금호강 어부의 피리 소리, 가야산의 해지는 모습 등 목가적인 사문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나루터에서 물건을 팔고, 피아노를 귀신통이라 불렀던 순박한 사람들이 다가올 것만 같다.
뱃길이 사라진 사문진 나루터에는 아직도 문화와 자연의 정취가 흐른다. 주막에서 국밥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한 잔의 술로 시름을 달랜 서민들의 삶이 녹아 있다. 두 편의 영화를 찍고, 가수들은 사문진을 노래한다. 백 대 피아노 콘서트는 매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지자체는 주막촌을 짓고 유람선을 띄워 나루터 복원에 힘쓴다. 낙동강 문화가 사문진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낙동강은 생명체와 도시의 어머니다. 천삼백 리 물길을 따라 흐르며 도시를 먹여 살린다. 스스로 젖줄이 되어 도시의 갈증을 해소하고 식물과 동물의 삶의 터전이 된다. 수많은 생명체가 강에 생명을 기대어 살아간다. 땅에 뿌리를 박고 사는 식물들, 어류와 양서류, 조류와 포유류, 사람들까지. 낙동강의 너른 품이 있어 도시와 생명 있는 모든 것이 살아갈 수 있다.
낙동강 물길을 따라 시대(時代)도 흐른다. 낙동강을 따라 뱃길도 나루터도 흘러가고 없다. 나루터에서 물건을 사고팔던 사람들은 가고 없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나루터에 모인다. 물은 사람을 모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생명의 시작이 물이고 살아가는 것도 물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나루터가 새 길을 연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길을 따라 사람들도 떠나고 돌아온다. 물길을 따라 문화도 드나들고 서민들의 애환도 여전히 흐른다. 그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