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아빠
엄마는 매년 11월에는 김장을 한다. 엄마에게 미리 김장 날짜를 이야기했다. 동생과 나의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9 월부터 우린 김장하는 날짜를 정했다. 엄마는 올해도 절인 배추를 주문해서 준비해 놓으셨었다. 매년오픈런에 달려가 절인 배추를 주문하시곤 했는데 이번에는 무슨 연휴인지 늦게 가서 엄마가 원하는 날짜에 주문하지 못했다. 우리는 토요일 김장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동생과 난 일을 하기 때문에 평일에는 도저히 김장을 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금요일에 배추가 도착하길 주문했으나 그게 여의치 않았나 보다. 그래서 마트에서 배달 가능한 목요일에 도착하도록 주문을 했었다. 배추가 상할 걸 걱정한 이모는 비어있는 김치냉장고에 배추를 보관하기를 엄마에게 당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 말을 무시했고 금요일 저녁 동생과 나에게 배추 상자를 열어 배추를 씻자고 했다. 목요일 도착한 배추가 너무 절여져 짜게 될 것을 걱정했던 엄마는 배추를 갈라 물에 씻어 채판 위에 올려놓으라고 시켰고 우린 그렇게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토요일 아침
김장 재료들을 준비한 후 배추를 살펴보았던 나는 배추가 갈 변이 되어 있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 엄마에게 배추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엄마는 배추 속 갈 변 된 것만 제거하고 그대로 김장을 하자고 했다. 동생과 난 엄마에게 이대로 김장을 하면 겨울 내내 김치를 먹을 수 없을 거라고 엄마한테 말을 했으나 엄마는 막무가내로 괜찮다고 담자고 했다. 그때 마침 이모와 김장 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셨다. 배추 상태를 본 이모는 맛을 보고 배추 맛이 이상하다고 이걸로 담으면 안 될 것 같다 말했다. 당황한 엄마는 배추를 샀던 마트에 연락을 했고 배추 상태에 대해 말하자. 마트 직원은 받은 날 반드시 김장을 했어야 한다며 바꿔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모와 같이 온 도우미 아주머니가 다른 마트에 절인 배추가 있는지 물어봐 주신다고 했다. 마침 그곳에서 여분의 절인 배추가 있다고 했다. 다만 배달이 안되니 직접 가지러 오라고 했다. 그래서 동생과 난 차를 끌고 마트에 갔다. 마트 도착해서 동생은 차를 주차하고 나는 마트 직원분을 찾아 전화했던 절인 배추를 가지러 온 사람이라고 했다.
여직원 분은 나에게 혼자 왔냐고 물었다. 나는 동생이 차를 대고 있다고 했다. 마트 여직원분이 같이 온 분이 남자분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직원 분이 다시 말했다.
남자분이랑 오셨어야 되는데 저 박스 무거워요. 여자분이 들기 힘든데….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지 않자
남자분이랑 나르셔야 되는데요
라고 다시 말했다. 우리 집엔 남자가 없어서 여자끼리 왔어요라고 하기도 뭐 하고 뭐라 말할지 몰라 멀뚱 거리고 있었는데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직원의 눈빛을 읽고 난
상황이 그렇게 됐네요.
라고 말을 했다. 직원이 ‘카트 끌고 오세요.’라고 말을 했고 카트를 가져오자 그 여직원 분은
그럼 저랑 같이 들어요
둘이 배추 상자를 들어 카트에 올렸고 동생은 배추를 카트에 다 싣자 마트 안으로 들어왔다. 늦게 온 동생이 배추 상자가 담긴 카트를 끌고 먼저 나가고 배추 값을 계산하고 동생과 함께 배추 상자를 차에 실으면서 동생에게 말했다. 아까 직원이 왜 나한테 남자분이랑 안 왔냐고 했다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동생은 ‘앞으로 우리끼리 해야 되는데 뭐!!!‘라고 말했다. 담담히 말하는 동생의 말을 들은 나는 더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차에 타고 가는 내내 그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우리 집에 유일한 남자였던 아빠는 더 이상 안 계신다. 우리 집에 남자는 없다. 별말 아니었던 그 직원의 말이 내 마음에 꽂혔다. 그 직원분은 단순히 무거운 상자를 날라야 했기에 했던 말이었을 텐데 난 그 말에 아빠의 부재를 다시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베란다에 걸려 있던 깎아진 대봉이 걸려있는 것을 보며 아빠 생각이 많이 났었다.
감을 유난히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대봉을 박스채 사서일부는 홍시가 되게 두고 일부는 깎아서 곶감 말리는 걸이에 걸어 베란다 한편에 걸어 두곤 했던 아빠였다. 엄마는 그래도 작년부터 본인이 직접 깎아 걸어 보니 곶감 걸이에 꽂는 것도 기술이 필요했다며 씁쓸하게 말씀하셨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을 꾹꾹 누르며 아빠가 그리워도 참았는데 마트 직원의 그 말에 아빠가 너무도 그리웠고 눈물이 터져 버렸다.
항상 우리 김장 멤버는 아빠 엄마 이모 나 동생이었다. 3년 전부터는 엄마 나 동생 이모, 아빠 대신 도우미 아주머님 이렇게 멤버가 바뀌었다. 멤버가 바뀌고 나서 힘쓰는 일은 내가 하거나 동생이 했다. 그냥 그렇게 올해도 별일 없이 보낼 거라 생각했는데 마트 직원에 말에 내 마음은 무너졌다 참았던 눈물이 지하 주차장을 다다르자 터져 나왔다 동생에게 말했다 잠깐 있다 올라가자고 동생이 물었다 왜 우냐고 극히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나와는 반대인 동생은 내가 아까 그 직원과의 대화 때문에 울컥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묻는 거였다. 아빠 생각이 나서라고 말했다. 그래도 동생은 기다려주었다.
김장을 새로 사 온 배추로 어찌어찌 끝내고 수육을 먹으며 또 아빠 생각이 났다. 수육을 좋아하시던 아빠의 모습 잔소리 하는 나에게 대답했던 아빠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생각이 나서 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이 일을 악물고 참았다. 점심 분위기를 망치기 싫었다. 엄마가 더 그리우실 텐데 내가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고 시간이 흐르면 잊히는 슬픔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