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 구조요청

sos 신호탄을 날리다.

by 채현

나는 원채 묵묵하고 남을 위한 삶을 살아왔었다. 남의 기분은 어떠한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의 행동으로 남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와 같은 것들을 고려하며 나를 돌아보는 것은 늘 등한시하였고, 그렇기에 어찌보면 나의 우울의 무덤은 내가 스스로 파헤치고 자초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치만, 짝꿍에게서조차 버림을 받고 상처를 받았을때, 타지에서 가족구성원 한명조차 없던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숨통이 터져 죽거나, 막혀 의식을 잃을것만 같았고, 타국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홀로 그런 쓸쓸한 운명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언니에게 sos 를 요청하였다. 거의 난생 처음으로 하는 나의 아픔에 대한 고백이였기에, 언니랑 줌 미팅을 하기 전까지의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리지만 가장 빠른 시간으로 느껴졌다.


'나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너는 그정도로 약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냐고 혼나면..?'

이런 걱정들이 안 들었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언니의 얼굴을 보고 한 15분동안은 전공이 맞지 않는다는 전혀 관련 없는 이유로 귀국하고 싶다는 말만 반복하였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언니가 답답해할 무렵, 나는 어린아이처럼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 나 사는게 너무 힘들어.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는데, 나 버티지도 못하겠어 진짜"


그렇게 손으로 얼굴을 덮은채 한참을 울다가 고개를 들었을때,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것만 같았다.

언니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있었으며 언니도 나와 같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고, 나를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말을 끝없이 반복하였다.


그러한 모습은 오랫동안 멈춰있던 또 얼어붙어있던 나의 삶의 태엽시계를 녹아내렸고, 나의 시간은 미약하지만 천천히 다시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시카고의 겨울은 여전히 차갑고 냉혹하였지만, 나의 구조탄에 응답하는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불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깨달음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나를 끌어안았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길을 잃은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사랑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돌아갈 품은 늘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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