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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등록부터 선착순..

산티아고 순례길 상상과 실제(2)

by 뒤로 걷기

지난 2월 초 파리행 비행기를 예약한 후 파리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지인 생장으로 이동하는 기차표를 검색하다가 같은 날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첫 번째로 파리(TGV)→바욘(환승 일반기차)→생장으로 이동하는 방법과, 두 번째로 파리(TGV)→보르도(환승 일반기차)→바욘(환승 일반기차)→생장으로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다른 점은 한번 더 환승을 한다는 것과 소요시간 차이가 한 시간 남짓 난다는 것인데 첫 번째 방법은 138유로, 두 번째 방법은 71유로로 가격 차이는 무려 두 배였다. 와이프 것까지 2장이면 134유로 차이로 순례자로서는 꽤 큰 금액이었다. 더구나 첫 번째 방법은 파리에서 아침 7시에 출발을 해 부담스러웠는데, 두 번째 방법은 12시 30분에 출발을 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 돈도 아끼고 여유 있게 출발하기 위해 두 번째 방법으로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런데 그렇게 이동했을 때 생장에 오후 7시 43분에 도착하게 되어 당일에 순례자 등록을 할 수 있을지 여부가 문제였다. 순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순례자 등록을 하고 순례자 여권인 크리덴샬을 받아야 하는데 만약 당일에 등록을 못하면 다음날 아침 8시 이후 순례자 사무소가 문을 연 후 등록을 해야 한다. 순례길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던 장면 중 하나가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보는 일출이었는데 당일 등록을 못하면 다음 날 새벽에 출발을 할 수 없어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되기에 중요한 관문이었다.


순례자들이 사용하는 부엔까미노 앱과 구글지도에는 순례자 사무소가 평일에는 8시 15분까지 운영한다 되어있지만 8시에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도 있어 안정적으로 순례자 등록을 위해서는 8시 전에 도착을 해야 했다. 구글 지도상으로 순례자 사무소는 생장역에서 도보로 11분 거리에 있어 좀 빠듯하지만 만약 기차가 7시 43분 정시에 도착하고 잰걸음으로 간다면 8시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4.10 목요일 12시 30분 몽파르나스역에서 TGV에 탑승했다. 브로드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바욘까지는 예정대로 도착하였는데 바욘역에서 생장으로 가는 기차가 시간이 지났는데도 출발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기관사와 승무원이 플랫폼에서 팔짱을 끼고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했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3분 정도가 지나서야 열차가 출발하고 생장에는 예정된 시간보다 그만큼 늦은 7시 46분에 도착을 했다.


와이프와 기차가 도착하기 5분 전부터 백팩을 메고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가 기차가 멈추자마자 맨 먼저 기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다시 기회가 없을 듯해서 대부분 순례자처럼 생장역을 배경으로 한 장, 역 앞 순례자 구조물을 배경으로 한 장 사진을 찍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동안 두 명의 순례자가 우리를 앞서 갔다. 8시 안에 도착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선착순이라도 하는 듯 일단 두 사람을 추월해서 뛰듯이 빠르게 걸어갔다.


순례자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호스피탈레로(자원봉사자) 한 사람이 막 순례자 사무소 문을 닫으려고 하고 있었다. 좌회전 깜빡이도 넣지 않고 일단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Just moment!라고 소리치며 순례자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던 다른 호스피탈레로가 문 닫을 시간이라 했다. 내가 시계를 가리키며 아직 8시 전인데 사정을 봐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7시 59분이었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와이프가 곧 따라 들어왔고 그다음 반쯤 열린 문으로 타이완 여성 순례자와 네덜란드 남성 순례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4명이 순례자 사무소로 들어오자 문 앞에 있던 호스피탈레로가 바로 문을 닫았다. 내가 뒤에도 10명 넘는 순례자가 오고 있다고 얘기했더니 만약에 그 사람들을 다 받게 되면 자기들이 아침에 퇴근해야 한다고 어쩔 수 없다 했다.


그렇게 1분도 남지 않은 시간에 순례자 사무소에 도착한 덕에 순례자 등록을 하고 크리덴샬과 순례자 조가비

까지 야무지게 챙겨 순례자 사무소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순례길에서 예약이 안 되는 공립알베르게의 잠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선착순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순례자 사무소에서 등록을 하며 그 예행연습을 한 듯하다.


예약을 한 숙소로 가 체크인을 한 후 다시 밖으로 나왔는데 다행히 날이 어두워지지 않아 30여분 마을 구경을 하고 순례 전 든든한 식사를 위해 미리 검색해 두었던 식당으로 갔다. 사실 순례자 등록을 못할 경우에는 간단히 샐러드 등으로 저녁을 때우고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챙겨 먹은 후 순례자 사무소에 들려서 등록을 하고 출발을 할 예정이었는데 등록을 한 덕에 가벼운 마음으로 맛있는 만찬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녁식사를 하며 기대하지 못했던 멋진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식사를 하는 레스토랑에서 생장의 상징 중 하나인 니베강 다리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생장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니베강 다리

그렇게 생장에서 기분 좋은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 6시에 첫 순례길에 나섰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전 8시까지 날이 흐린 것으로 되어 있어. 일출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되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출발을 했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어둑한 길을 30~40여 분인가를 걸어 산을 오르는데 왼편하늘이 주황색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해돋이 전 주황색으로 물드는 피레네 산맥


그리고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오르자 애태우며 기대했던 피레네 산맥의 장엄한 일출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들과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해돋이를 숨 죽이며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


피레네 산맥에서 마주한 일출

멋진 일출에 힘입어 순례길 중 가장 난 코스인 25km에 이르는 피레네산맥을 넘는 첫 순례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론세스바에스 알베르게 이 층침대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도 해돋이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돌아보면 운이 좋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얻을 수 있었던 선물들이 아닌가 싶다. 성 야고보가 전하던 복음 중 '구하면 얻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떠오르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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