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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백팩

산티아고 순례길 상상과 실제(4)

by 뒤로 걷기

순례길 백팩을 싸며 욕심의 무게라는 짐을 결국 줄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바람직한 무게라는 6-7kg의 짐을 가지고 순례길에 오는 사람들은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순례에 가기 전 나름 많이 줄였다고 한 것이 나는 13kg 와이프는 9kg였다. 와이프 약과 건강 관련 아이템들은 꼭 필요하다는 구실로 무게를 더 줄이지 못하고 결국 순례를 하며 어쩔 수 없이 백팩운송을 해 주는 동키서비스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동키를 이용하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이 있었다. 먼저 다음 행선지에 숙소를 예약하지 않으면 동키를 보낼 수가 없었다. 따라서 예약이 안되고 선착순으로 가야 해 숙박 여부가 불투명한 공립 알베르계 등은 이용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백팩을 메고 가다가 컨디션에 따라서 머물거나 더 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해도 동키를 보낸 예약된 행선지 밖에 갈 수 없었다


아무튼 동키를 이용하기 위해 매번 다음 행선지의 숙소를 예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로그로노로 가기 전날 그곳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한번 가보고 싶었다. 기부제로 운영되고,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도 하고, 순례자들끼리 커뮤니티 저녁을 하면서 서로를 아는 시간을 갖는 이벤트가 있어 머물러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예약이나 백팩을 미리 보낼 수 있는지 전화를 했으나 역시 선착순이고 동키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고 했다. 궁리를 하다 동키회사에 연락을 해서 내일 성당 알베르게에 머물려고 가는데 그곳은 예약도 안 되고 동키서비스도 안 된다고 하는데 그럴 경우 배송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행선지에 퍼블릭이라고 적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내가 받을 수 있게 배송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 말만 믿고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백팩을 놓고 출발을 했다. 그리고 로그르노에 거의 다 도착을 했을 때 동키회사에 연락을 해 백팩을 어디 가서 찾아야 되냐고 물었더니 사진을 몇 장 보내주었다. 사진 속에는 찾아가야 할 장소와 도어록, 비밀번호 그리고 동키회사 보관소의 모습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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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키회사에서 보내온 사진 들


로그로노 성당 알베르게에 도착해 와이프 보고 체크인을 위해 근처에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 나는 백팩을 찾으러 갔다. 많은 순례객들이 성당알베르게 체크인 전에 도착해 자신들의 가방을 미리 줄 세워 놓고 주변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50417_130148.jpg 선착순 알베르게 체크인 전 모습

그런데 10여분 거리의 보관소에 갔으나 내 택배가 아직 오지 않아 동키회사에 연락을 했더니 로그로노는 제일 마지막 행선지이기 때문에 아마도 조금 늦게 도착할 수 있다고 얘기를 했다. 할 수없이 다시 성당 알베르게로 돌아가 두 시가 되어 체크인을 하고 시내에 나가서 쇼핑도 하고 점심도 먹고 구경을 다니다 세 시 반 정도 되어 다시 보관소로 가서 확인을 했지만 백팩이 없었다.


다시 동키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갑자기 내 백팩이 시립 알베르게로 갔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행선지를 퍼블릭이라고 썼기 때문에 시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계로 배달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백팩을 찾아야 할 곳까지 알려주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내가 퍼블릭이라고 썼고 퍼블릭은 오직 시에서 하는 알베르계 뿐이고 그래서 그리로 보냈다는 것이다.


어제저녁 그리고 불과 몇 시간 전 얘기한 것과 달라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알겠다고 하고 시립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안내데스크에 있는 사람이 내가 이곳에서 숙박을 하느냐고 물었다. 숙박을 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러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우리 백팩이 이곳으로 보내졌다고 얘기를 했더니 지금 보관 중인 백팩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무엇보다 와이프가 복용할 약들이 백팩에 들어있어 백팩을 분실하면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시립 알베르게를 나와 다시 동키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분명히 그쪽으로 배송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퍼블릭이라고 쓴 내 잘못이라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내가 혹시 배송요청을 했을 때와 다른 사람이랑 통화를 하나 해서 확인했더니 요청을 받은 사람도 본인이고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도 본인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났지만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당신과 나눈 대화는 모두 WhatsApp 문자메시지로 남겨져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정식으로 문제를 삼겠다 얘기하고 상사와 전화 연결을 해 달라고 했다. 그제야 그 직원은 정색을 하는듯한 목소리로 5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몇 분 후에 WhatsApp으로 백팩을 직접 운송한 배송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가 분명히 시립 알베르게에 갖다 놓았다는 것이다.


내가 시립 알베르게에서 나왔는데 들어갈 수도 없고 백팩도 없다고 한다고 했더니 자기가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란다. 10여분 정도 지난 후 배송원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가 나를 데리고 시립 알베르게의 보관창고로 갔고 거기에 백팩이 있었다. 아마 시립알베르게 리셉션에 있었던 사람이 자리를 비운사이에 백팩을 가져다 놓았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몇 시간 동안 길을 잃었던 백팩을 찾게 되었다.


추정컨대 전화로 요청을 받았던 직원이 배송원에게 나의 상황을 전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배송원은 퍼블릭이라고 행선지가 적혀 있으니 당연히 시립알베르게로 백팩을 배송을 한 것으로 보인다. 동키회사에 전화를 해서 한바탕 욕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래봐야 내 에너지만 소모할 뿐 변할 것이 없을 것이기에 다시는 그 회사랑 거래를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그냥 잊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집사람 백팩을 동키로 보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동키회사 봉투 밖에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 회사에 다시 연락을 해서 배송 요청을 했다. 이번에는 큰 문제없이 배송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 후로도 배송요청으로 몇 번 그 직원과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런데 본인의 잘못된 행동이 미안했었던 듯 그 사건 전에는 배달 요청을 하면 사무적으로 컨펌되었다고 간단히 문자를 보냈는데 이후로는 연락을 하면 다정히 내 이름과 와이프의 이름을 언급하며 감사 이모티콘까지 보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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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다음 날 답변과 사건 며칠 후 달라진 답변


아무튼 혹시나 백팩이 분실되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얼마간 노심초사하고, 또 동키회사와 일촉즉발 상황을 피해 해피엔딩이 되어서 다행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일부 스페인 사람들이 물건살때와 사고 난 후의 태도가 다르다고 들었던 말을 직접 실감해 이후 순례길에서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래도 순례 중 마음 다스리는 연습 덕인지 당황스러웠던 상황에서도 절제를 해 불필요한 감정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상대가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게 하고 웃을 일도 생기지 않았나 싶다. 순례길에서 야고보가 전하고자 했던 복음 중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이 구현되는 작은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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