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상상과 실제(5)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고 있지만 실제로 원하는 때에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별 고민 없이 며칠 만에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물리적인 시간뿐 아니라 건강상태, 경제사정 그리고 주변여건 등 여러 조건이 다 갖춰져야 실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건강, 시간, 경제적인 조건 등은 본인 스스로 잘 관리하고 준비할 부분이나 마지막 퍼즐인 주변여건은 혼자 잘 챙긴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흔히 마주하는 경우가 집안에 보살펴야 할 아픈 사람이 있거나 순례기간 중에 돌봐줄 곳이 마땅치 않은 반려견이 있는 상황 등이다.
나도 몇 년 동안 집사람 건강문제 때문에 순례길에 오르지 못했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순례기간에 큰 문제가 없어 실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혼자 가려던 순례길에 와이프가 같이 간다고 하는 바람에 함께 사는 코코(반려견)를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가 큰 고민으로 떠올랐었다.
외국여행을 할 때마다 비용을 지불하고 전문적인 보호소에 맡기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아 여기저기 지인 등에게 맡겨 보았는데 봐주는 사람도 코코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듯했다. 그래도 그중 순한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처제집에 갔을 때 그나마 제일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이번에도 처제에게 부탁을 했다.
우연히도 순례길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으며 만난 첫 번째 한국인 순례자가 보아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데리고 온 분이었다. 하루에 10만 원이 넘는 비용도 부담스러웠지만, 주변에 믿고 맡길 만한 사람도 없고 보아의 나이도 많고 백내장에 걸린 등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마음이 안 놓여서 결국 데리고 왔단다.
오래전부터 산티아고 길을 꿈꾸어온 그녀는 백팩은 동키서비스로 보내고 보아를 안고 순례를 하는데 힘들어 보였지만 무척 행복해 보였다. 이후에도 순례길에서 또 숙소에서 몇 번 마주치다가 한동안 볼 수 없어 궁금했었는데 24일 차에 비아브란카 다음 마을에서 숙소에서 나오는 그녀와 마주쳤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순례길은 걷는 것보다 숙소 구하기가 힘들어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전날 머물렀던 숙소도 예약 시에는 반려견 동반이 가능하다고 했다가 막상 도착하자 주인이 난색을 표명했고 함께 머무는 순례자 모두가 괜찮다고 하고 나서야 하룻밤을 묵을 수 있었다 한다.
오세브로이로 가는 길에 함께 이야기를 하며 걷다 휴게소에서 헤어진 후로 그녀를 더 이상 만나지 못했는데 건강하게 순례를 완주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으로 믿는다. 그녀 말고도 하루 한번 이상은 반려견들과 함께 하는 순례자들을 만나곤 했는데 모두 힘든 상황 속에서도 반려견과 조화롭게 순례를 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반려견은 프랑스 순례자를 주인으로 둔 후프라는 5살 강아지였는데 이번이 3번째 순례길이라고 했다. 순례길과 숙소에서 몇 번 마주친 후프의 주인은 특이하게 배낭대신 손수 만든 수레를 허리끈으로 매달아 끌고 순례를 하는데 열심히 주인을 쫓아가는 후프가 귀엽기도 안쓰럽기도 하였다.
또 재미있던 광경은 나헤라 가는 길에 반대편에서 오는 순례자와 반려견 2마리 그리고 염소 한 마리였다. 순례자는 야영을 위한 텐트를 메고 있는 것 같고 반려견 2마리도 등위에 백팩을 메고 있었고 염소만 맨몸으로
자유롭게 걷고 있는데 반려동물들은 이 상황에 익숙한 듯 자신들만의 순례를 즐기는 듯 보였다.
또 한 번은 아주르 초입에서 만난 소형 반려견이었는데 주인의 큰 보폭에 맞추어 종종걸음으로 쫓아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얼마 지나지 않은 카페에서 식사를 하는 주인 옆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 녀석을 다시 볼 수 있었는데 주인과 함께여서 그런지 세상 평온한 표정이었다.
순례길에서 반려동물들과 함께 걷고 있는 순례자들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함께 순례를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나도 잠시 코코와의 동행을 생각해 보았으나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곧 포기를 했었다. 본인 몸 하나도 돌보기 쉽지 않은 힘든 순례길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을 극복하며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순례자들이 존경스럽다.
식구처럼 잘 지내다 건강이 안 좋아지거나, 늙었다는 이유 등으로 반려견들을 길에다 버리는 무책임한 견주들이 많은 세상에 순례자로서 극복해야 할 힘든 상황들 외에 예상 치 못한 여러 어려운 일들과 마주해야 하는 반려견들과의 순례길을 기꺼이 함께하고 있는 순례자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해마다 여름휴가철 이후 피양당한 반려견들이 길에서 또는 보호소에서 자신들을 버린 돌아오지 않을 비정한 주인을 기다리는 애처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고된 순례길이지만 사랑하는 주인과 함께하는 반려견들은 선택받은 강아지들이고 그걸 아는지 순례길 위에서 만나는 반려견들의 표정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