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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 만난 한국 청년들

산티아고 순례길 상상과 실제(6)

by 뒤로 걷기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국인 비율이 10위 정도 된다는데 내가 순례하는 기간에는 한국인 단체 순례팀이 많아서 그런지 체감상 한국인들이 제일 많은 듯했다. 단체로 온 순례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인 반면에 개인적으로 온 순례자들 중에는 의외로 젊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흔히 요즘 젊은 세대를 혼란스러운 세대, 꿈과 기회를 잃은 세대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쉽게 들을 수 있는 그들의 자조적 말이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것이다. 평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새털같이 많은 젊은 사람들이 왜 벌써 저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일까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이들에게 어설픈 조언은 오히려 부작용이 될 수 있기에 늘 조심스러웠고 그저 따뜻한 미소로 그들의 안녕과 밝은 앞날을 기원하곤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이번 순례길을 걷는 동안 여러 명의 한국 청년들을 만나 이런저런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우선 한참 젊은 나이에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보고, 즐기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하루 종일 걷기만 하는 자칫 지루하고 따분할 수도 있는 800여 km 순례길에 나섰다는 자체도 평범치 않은데, 30여 일 넘게 자기를 돌아보고 단단히 하는 시간을 갖는데 진심이라는 것이 더욱 놀랍기만 했다.


하지만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없어 적은 예산으로 순례길을 걷고 있는 듯 자는 곳도 저렴한 공립알베르게를, 먹는 것도 식당이나 알베르게 제공하는 오늘의 메뉴 등이 아닌 슈퍼에서 재료를 사서 공동주방에서 만들어 먹던지 아니면 간단한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는 걸 종종 볼 수 있었다.


그중 몇몇이 항상 바게트를 배낭에 꽂고 다니며 허기를 달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쓰이고 밥이라도 한 끼 사주고 싶었는데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비아프란카의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슈퍼에 가려는데 여러 차례 길에서 인사를 하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청년들과 같은 숙소에서 마주쳤다.


20250503_152638.jpg 비아프란카 마을 전경(스페인하숙 촬영지)
20250503_190636.jpg 순례길 중 가장 아름다웠던 마을 중 하나인 비아프란카 강변 산책로


잘 되었다 싶어 모두 저녁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다. 마침 공동주방이 있는 곳이어서 슈퍼에 가서 돼지고기, 야채 등 식재료들을 넉넉히 샀다. 가지고 간 튜브 고추장을 모두 넣고 돼지불고기를 만들고, 감자와 계란을 삶고, 스페인 라면에 가져간 한국 라면 스프를 넣어 끓였다.


고맙게도 급하게 만든 부실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순례길에서 제일 어린 20살 기*, 순례를 마치고 유럽여행을 계속할 것이라는 민*, 아프리카 여행 후 순례길에 왔다는 규*, 친화력 갑 여장부 진*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순례길에 온 이유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저녁 한 끼를 했다.


한참 공부하거나 일할 나이에 왜 순례길에 왔는지 묻고 싶던 꼰대 같은 마음을 읽었는지 각자의 짧은 이야기들 속에는 내가 그 나이에 결코 갖지 못했던 성숙하고 긍정적 사고들로 열악한 환경을 잘 헤쳐나가는 자신만의 방법 등이 담겨 있었다. 반듯한 그들의 이야기가 밝은 내일을 기대하게 했다.


서로의 일정이 달랐는데도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 대성당 앞 또는 골목길에서 포르투로 갔다는 민* 외에 그날 식사를 함께 했던 청년들을 모두 만났다. 전원 순례길을 완주한 것이다. 모두 더욱 단단해졌을 터이니 각자의 인생길을 잘 개척해 나가며 원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해 본다.


20250511_164734.jpg 산티아고 데 콤보스텔라 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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