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알베르게 천사

산티아고 순례길 상상과 실제(3)

by 뒤로 걷기

순례 준비를 하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정보 중 하나는 숙소인 알베르게에 관한 것이었다. 매일 20-30km를 걷고 난 후 숙소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해야 다음 날 또 순례길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평판이 좋은 알베르게를 찾아 하룻밤을 묵는 것은 모든 순례자들의 주요관심사 중 하나이다.


순례계획을 세우며 머물기로 예정된 지역의 평판 좋은 알베르게 등을 알아보기 위해 순례자앱뿐 아니라 카페, 블로그 또는 YouTube에서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이 남긴 글이나 영상 중에 추천하는 알베르게를 리스트를 작성했는데 실제로 순례 중 숙소예약을 할 때 제일 먼저 활용을 하였다.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추천한 알베르게 중 하나는 두 번째 목적지인 수비리의 수세이아였다. 처음 그곳에 예약 가능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메일을 보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약 가능 회신이 왔다. 이후에도 예약확인과 저녁 식사에 와이프를 위해 따로 베지테리언 메뉴를 준비해 달라는 요청으로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순례 둘째 날 수비리에 도착해서 수세이아에 들어섰을 때 젊은 여성이 내 이름을 불러주며 반갑게 맞아주어 깜짝 놀랐다. 메일을 주고받은 사람이 나이가 지긋한 여성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스페인풍이 느껴지는 아리따운 여성이었다.


수세이아를 운영하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Sara인데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직접 만들었다는 웰컴 드링크를 건네주었다. Sara는 처음 내가 Dear Sara!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냈었던 게 존중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30여 분 넘게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왠지 아주 오래전 알았던 사람처럼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와 순례길과 까미노 블루 그리고 몇 년 전 순례길에 와서 수세이아에 머물고 갔다는 손미나 씨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배려심 많고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느낌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내가 고민하던 일을 망설임 없이 나서 준 것이었다. 내가 다음날 와이프 백팩을 팜플로나로 보내야 하는데 예약한 숙소가 아파트라 받을 사람이 없어 백팩을 보낼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바로 본인이 한번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30여 분이 넘게 팜플로나 숙소 주인과 주변 호텔 두 군데와 통화를 하고 동키(백팩 배달회사) 회사와 연락을 해서 내가 예약한 숙소 근처 호텔에 백팩을 보내 내가 픽업을 하고 다음날 다시 보낼 경우에도 그 호텔로 가져가면 될 수 있도록 주선을 해 주었다. 번거로운 일을 마치 내 일처럼 해결해 주니 감동이었다.


또 세탁을 하면서도 감동이 이어졌다. 파리 2박과 생장과 론세스바에스에서 머물며 빨래가 많아져 어쩔 수 없이 세탁기를 돌려야 했다. 세탁 시간이 40여 분 정도 되기에 내가 세탁기 옆에 앉아 있었더니 세탁이 끝나면 본인이 바깥 빨랫줄에 널어줄 테니 가서 쉬라고 한다.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순례자들이 함께 하는 커뮤니티 저녁식사에서도 본인이 직접 만든 스페인 전통음식을 어떤 재료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일일이 설명을 해주었을 뿐 아니라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며 마치 시골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먹는 집밥처럼 따뜻한 느낌을 가지게 해 주었다.


순례자 커뮤니티 디너


마지막으로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준비해 준 조식 박스도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각 순례자의 이름이 적힌 박스에 샌드위치, 치즈, 햄, 삶은 계란, 오렌지주스, 요구르트, 커피와 땅콩, 스낵 등 10여 가지가 넘는 먹거리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정성스럽게 준비된 조식박스

31일 순례길에 여러 알베르게에 머물러 보니 일부 사립알베르게들이 너무 상업적이 된 모습에 실망을 하기도 하였는데 수세이아의 경우 진심을 다해서 순례자들을 대하고 있었다. 내가 순례를 마친 후 까미노 블루(순례길을 그리워하는 증상)를 겪게 된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수세이아에서의 따뜻한 추억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업무나 개인적인 여행으로 여러 나라들을 다녀보았지만 Sara처럼 아낌없이 내어주고, 심성 곱고, 친절한 사람은 보지 못했기에 ‘천사’라고 칭해도 전혀 과장되지 않다는 마음이다. 까미노가 준 두 번째 교훈은 ‘상대방을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었는데 Sara라는 알베르게 천사를 통해 얻은 소중한 배움이었다.



<최근 소식>


한국에 돌아와 수비리의 수세이아 알베르게의 스페인 집밥 같은 커뮤니티 저녁 등에 대해 SNS에 소개를 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어떤 분이 그곳에 머물렀는데 Sara가 팔을 다쳐 요리를 할 수 없는 상태라 맛있는 저녁을 못 먹어서 아쉬웠다는 댓글을 달았다.


놀라서 Sara에게 안부편지를 썼는데 얼마 후 온 답장에 순례자들 저녁을 만들다 끓는 수프가 흘러 목과 어깨 팔에 화상을 당했다 했다. 그래도 멈추는 법을 배웠고, 불편을 감수해 주는 순례자들에게 오히려 감동하고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안타깝고 속상해 마음이 쓰였는데 2년 전 집에서 끓는 물에 손에 화상을 당했을 때 메디폼 화상전용을 패치를 사용해 상처가 거의 없어졌던 기억이 났다.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약국에서 내가 썼던 제품들을 구매해 항공우편으로 보냈다. 힘내라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도 동봉했다.


“You are a good inspiration to the pilgrims. I hope you recover soon and play your important role.”


Sara가 하루빨리 완쾌되어 내가 받았던 깊은 영감을 많은 순례자들에게도 전해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