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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일없이사는사람 Apr 17. 2024

다른 사람의 일

남이 일하는 것을 평가하기는 쉽다


볼일이 있어 옆 동네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오후 볼일을 보기 전 마침 점심시간이라 가까운 식당에 들러 배를 채우기로 했다.

예전에 친구로부터 추천을 받은 적이 있고, 지도 앱의 평점도 높은 초밥집이 마침 눈에 띄었다. 

가장 사람이 많은 정오 시간대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사람이 앉을 테이블이 있어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그리고 초밥이 나오길 기다리며 처음 방문한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매장이 크지 않아 테이블은 많지 않았고 (초밥 만드는) 셰프와 서빙을 하는 분,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 이렇게 세 명 정도 직원이 계셨다. 테이블 수가 적었지만 점심시간이라 만석이었고 여기저기서 서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셰프는 카운터 석 안 쪽에서 바깥쪽을 바라보는 곳에서 열심히 초밥을 만들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계속 홀 상황을 주시하면서 서버에게 지시를 내리는 시스템인 것 같았다. 몇 번 테이블에 장국, 몇 번 테이블에 식전 샐러드, 이런 식으로 순서에 맞게 명령을 내리면 그대로 서버가 음식을 가져다 날랐다. 초밥이 완성되면 역시 셰프의 호출에 의해 서버가 테이블로 나르고 있었다. 그 외에 기본적인 물이나 반찬, 테이블에서 직접 호출이 오는 요청 사항들은 오로지 서버 판단에 따라 처리가 되고 있는 상황. 



밥이 나오는 동안 할 것도 없으니 자연스레 가게 안의 일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서버를 유심히 지켜보니 먼저 부른 순서대로 테이블에 가는 것도 아니고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판단하여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일처리 순서에 대한 룰이나 효율적인 동선을 사용하고 있지 않아 보였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가게 안에서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며 일을 하셨으나 응대가 빠르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경험이 없으니 어떤 것이 식당에서의 효율적인 일 처리 방식인지 모른다. 식당 운영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거의 안 봐서 뭐라 아는 척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손님들 요청 순서대로 일을 하는 게 맞는지 (손님 입장에선 당연히 이게 공평하고 맞다고 생각이 되지만), 아니면 빨리 끝나는 일을 먼저 해서 요청 리스트를 빠르게 줄여나가거나 덜 중요하거나 급하지 않은 일은 뒤로 미루는 게 더 효율적인지 아는 게 없으니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냥 두 명이 해야 할 일을 한 명이 해야 해서 과부하가 온 것일 수도 있다. 

역시 내 일이 아니니 정확한 일의 양이나 배분 방식 또는 가게 내부 속사정을 알 리가 없다.


알고 보면 나만 발을 동동 구를 뿐, 그 서버 분은 현재 가게 안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대 효율을 뽑고 있으며 늘 그렇게 일을 해왔고 전혀 힘들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괜한 오지랖만 발동한 것이 된다. 



아무튼 계속 보면서 정신없겠다, 힘들겠다... 하지만 나라면 이러저러했을 텐데 머릿속으로 비전문가의 훈수를 두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식당을 관전하며 기다리는 사이 내가 주문한 초밥이 나왔다. 

분식집처럼 주문하자마자 바로 식사가 나오진 않았지만 워낙 바쁜 시간대니 화가 날 일도 아니었다. 음식 자체는 평점 대로 훌륭했고 서비스도 문제는 없었기에 좋은 기분으로 식사를 하고 나왔다. 

현상을 보면 장점을 먼저 보는 게 아니라 <개선점>부터 찾는 게 직업병인가 싶기도 하다. 

남 일이니 이렇게 쉽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거겠지 싶다.





사실 이 관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옆 테이블의 노부부 때문이었는데, 거진 연세가 80 이상 돼 보이시는 나이 많은 분들이셨다. 본격적으로 음식이 나오기 전 서버 응대가 답답하셨는지 할아버지가 서버를 불러 큰소리로 투덜거리며 역정을 내셨기 때문이었다. 서버 분은 담담하게 아무런 감정 표현 없이 서비스에만 집중하셨다. 


다행히 식사가 나오고 두 분은 음식을 드시기 시작하셨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추가 주문도 하시는 걸 보니 다른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할아버지는 아까 서버를 대할 때와는 180도 다른 다정하고 나긋한 어조로 할머니에게 말씀하셨다. 


"당신 속이 안 찬 거 같으면 더 주문해요"

라고 존댓말로 스윗하게 말씀하셔서 또 나를 놀라게 하셨고. 

약간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는 식사를 마치고 할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두 분은 가게를 나가셨다. 



나는 입 안에 든 초밥을 우물거리며 그 광경을 보고 속으로 박수를 쳤다. 

그 사이 어느덧 가장 바쁜 시간대도 지나가고 꽉 차 있던 테이블이 하나둘씩 비기 시작했다. 때늦은 시간에 식사를 하게 된 분들이 들어와 빈자리를 채웠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여유를 찾은 가게의 정경이 눈앞에 보였다. 

그렇게 손님과 점원 모두 조그마한 불편이 있었지만 다들 무사히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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