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5일 일요일 아침
네루다의 시집 <질문의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질문의 소중함. 소중함의 소중함. 소중한 사람의 소중함.
나는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은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It's below zero인 바깥에서 따뜻하다는 것이 때론 마음을 내려 앉힌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 삶을 긍율하는 것이라는 어떤 악당의 대사가 떠오른다. 그리고 최승자의 수필집을 읽기 시작하는데, 8-90년대에 적힌 글들이 지금읽기에도 감각적으로 전혀 뒷쳐져있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다. 세상을 깊게 보는 사람의 글에는 힘이 있다. 한편으론 사람이란 본질적으로 비슷한것을 원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책 '이 별에서 우린 잠시 매혹적이다'의 원서를 사려한다. 빠르게 한번 읽어보고 이 책을 사용해야 할 일이 있다.
영하십도라면 반드시 두틈하게 입고 다녀야 되는 것일까. 살게하는 것은 무엇이고 무너뜨리는 것은 무엇일까. 뇌가 명령내리는 습관의 중독. 그것이 도파민의 양이 많아지는 행위라면 스님과 신부님은 도파민을 일정하게 컨트롤 하는 사람들일까.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세상의 끝일까. 에덴동산 같은 곳일까. 그저 이런 저런 생명과 비생명들이 여기저기 흩어지고 나뉘어져 살아가는 곳일까. 타오르는 질문들의 불꽃.
“말해줄래, 장미가 발가벗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게 그냥 그녀의 옷인지?”
“나무들은 왜 그들의 뿌리의 찬란함을 숨기지?”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 피를 만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내 시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개미집 속에서는 꿈이 의무라는 건 사실일까?”
“항상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 비해 더 고통스러운가?”
“히틀러는 지옥에서 어떤 강제노동을 할까? 벽에 페인트질을 할까 아니면 시체를 다룰까?” “거기서 그에게 수없이 태워 죽인 아이들의 재를 먹일까?” (이건 슬프고 슬프며 고통 스러운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