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1990년대 국내에 재즈붐이 일었을 때 몇몇 재즈 뮤지션들의 인기가 상당하였습니다. 그중 한 명이 팻 메스니입니다. 키스 자렛, 칙 코리아, 허비 행콕 등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에 있었던 주요 아티스트들도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였고 재즈 퓨전은 늘 재즈팬들의 관심이었습니다. 또한 기저에는 스윙, 밥 등 현재의 재즈가 있게 한 스타일들이 늘 소구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시리즈는 팻 메스니의 음악과 작품에 대한 안내입니다. 5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재즈계의 아이콘이자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인 메스니와 더욱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순수의 시대
시기: 1970년대 중반 ~ 1980년대 중반
레이블: ECM
이 시기는 메스니가 20대 초반에 프로 경력을 쌓기 시작하면서 솔로 및 그룹 데뷔 앨범을 연이어 발표하는 시점입니다. 30대 초반까지 10여년에 걸쳐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합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의 대표작들이 아래에 있습니다. ECM 레코드를 통해 발표한 1976~1984년 사이의 주요작들로 일부는 라이선스 LP로 발매되었습니다.
여기서 ECM(Edition of Contemporary Music) 레코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69년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가 독일 뮌헨에서 설립한 회사로 재즈, 클래식, 월드 뮤직을 취급합니다. 그러다보니 키스 자렛같은 경우는 ECM에서 역사적인 재즈 앨범들을 발표함과 동시에 바흐나 모차르트 그리고 쇼스타코비치 같은 현대 작곡가의 작품에도 도전을 하였습니다.
ECM에 소속된 재즈 뮤지션들은 미국의 신진과 유럽 재즈를 이끄는 여러 세력들을 규합하여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혼자 또는 그룹으로, 게스트로 아니면 협연으로 만들어 냅니다. 그 결과 ECM 재즈는 다른 레이블과 구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감상자는 미국적이지 않은 실험성을 바탕으로 독특함, 모던함, 세련됨 등을 느낄 수 있는데 이를 이씨엠 재즈 스타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중심에 팻 메스니의 음악이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유럽에서 봤을 때 포크적인(각 나라의 고유한 음악적 성격)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미국의 일상을 묘사한 것과 같은 그런 스타일. 이는 또한 어메리카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ECM 시절을 순수의 시대라고 요약합니다.
다양성의 시대
시기: 1980년대 중반 ~ 2000년 초반
레이블: 게펜(워너)
1986년 프리 재즈의 선구자 오넷 콜맨(1930~2015)과 같이 한 <Song X>가 그의 첫 게펜 작품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1986~2002년 사이 게펜(워너)에서 발표한 메스니의 주요작들입니다. 주로 팻 메스니 그룹(PMG) 이름으로 발표한 재즈 앙상블이 많습니다.
1980년대 후반 동네 시장 골목길 어딘가에 음반 가게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건진 음반이 우측 상단에 있는 PMG의 1987년 작품 <Still Life(Talking)> 입니다.
이야기하는 정물화? 처음에 이 앨범을 들었을 때 조금 실망을 하였습니다.
ECM의 메스니는 없고 이건 완전히 다른 연주자의 다른 작품처럼 들렸으니까요.
아티스트는 지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합니다. 그게 대중의 눈으로 보면 실망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열광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제가 느꼈던 <스틸 라이프>의 당혹스러움은 아마도 순수한 그의 이전 앨범 대비 매우 다양한 사운드와 악기를 도입하고 브라질 느낌의 하모니와 리듬이 여기저기 있어서 그랬을 겁니다. 저도 이런 편견으로 음악을 접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의 게펜 시절 음반을 하나 둘 꺼내 듣기 시작합니다. 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라틴 재즈와 월드 뮤직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편 <Still Life>는 1992년 최고의 재즈 퓨전 연주로 그래미상까지 받았습니다. 이후 발표하는 앨범들도 그래미 상을 받게 되고 메스니의 음악은 다양성과 실험성을 통하여 명실공히 당대 최고의 퓨전 뮤지션에 오르게 됩니다. 물론 그를 받쳐주는 그룹 멤버들의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만.
메스니를 좋아하는 팬들로서는 ECM이 더 취향에 맞을 수도, 게펜/워너 시절이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쳐 메스니에 더 다가가고 그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라질, 라틴, 월드 뮤직 그리고 다양한 하모니와 보컬 이런 음악적 소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30대 중반에서 40대 후반에 발표한 메스니의 음악을 권해 드립니다. 참, 그의 트리오 앨범은 많지 않습니다. 2000년 전후 앨범이 있는데 그냥 PMG의 연장선으로 보셔도 무방하겠습니다. ECM 시절 대배 게펜에서의 작품들은 라틴 재즈라고 해도 될 정도의 리듬감, 멜로디, 하모니 등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다양성의 시기라고 칭합니다.
메스니, 그의 시대
시기: 2000년대 중반 ~ 현재
레이블: 논서치, BMG, 모던 레코딩스
아래 사진은 메스니가 논서치를 통해 발표한 작품들입니다. 2005~2020년 사이의 앨범들입니다.
BMG와 모던 레코딩스를 통해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소품 또는 프로젝트성 앨범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메스니가 50대에 접어드는 때인데 이전 대비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음반사도 게펜, 워너 브라더스를 거쳐 논서치로 옮기는 데 이 논서치도 워너 브라더스의 계열사입니다. 사실 논서치는 중저가 클래식 앨범 중심의 레이블이였는데 여기에 월드 뮤직이 추가되고 메스니 같은 재즈 연주자들도 같이 하게 됩니다.
맨 위 좌측에 있는 2005년도 앨범 <The Way Up(올라가는 길)>이 그의 첫 논서치 작품입니다.
이 앨범을 발표하고 메스니가 투어를 했는데 2005년 4월 말 내한 공연을 했습니다.
공연 중간에 메스니가 한 마디 하더군요.
"오늘 공연은 DVD로 만들 예정이니 한국 팬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 도입부 혹은 중간중간에 나오는 사운드에 맞춰 열심히 손뼉을 쳤던 기억이 납니다.
이 영상은 인터넷이나 IP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앨범도 베스트 컨템퍼러리 재즈 연주로 그래미상을 받습니다. 게펜 시절의 라틴 재즈를 계승하면서도 좀 더 치밀해진 그리고 더 깊이 있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후 발표하는 작품들은 기존 음악과 다르기도 하지만 그만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거울 속의 메스니 같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메스니가 내한한다고 해서 공연장에 갔더니 솔로인건 알았는데 무대 뒤에 있는 엄청난 하다못해 정신없는 장치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앨범이 <Orchestrion>입니다. 오케스트리온은 일정한 순서에 의해 연주되는 기계장치입니다. 오케스트리온의 연주와 더불어 메스니만의 기타 연주가 전개됩니다. 이전 작품과 많이 다릅니다.
그 이후 작품들에서도 실험적이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기색이 보입니다.
2012년 작 <Unity Band(유니티 밴드)>는 테너 색소폰을 라인업에 넣었습니다. 참고로 메스니는 혼 섹션 중 트럼펫은 채용하지만 색소폰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1980년 발표한 <80/81> 앨범을 제외하고요. 이 앨범이 32년 만에 테너 색소폰을 집어넣은 작품입니다. 색소폰이 재즈에서 메인 악기가 된 배경에는 밥을 창조한 찰리 파커의 영향이 컸습니다. 일명 "버드"라 불리던 그 사나이... 재즈의 연주력, 기교 그리고 예술성을 색소폰으로 끌어올린 인물입니다. 그러나 메스니는 이러한 편성을 탈피한 그만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 이후 메스니가 BMG를 통해 몇 장의 소품같은 앨범을 발표하였습니다. 또한 사이드 아이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모던 레코딩스(BMG 산하 레이블)를 통해 실황 앨범을 선보였습니다.
이처럼 메스니는 자신을 관조하면서 그의 시대를 펼치고 있습니다.
요약
① 메스니는 ECM 시기에 순수한 그의 스타일을 추구합니다. 한편으론 미국적이지만 기존 재즈의 주류와 다른 그만의 스타일이 재즈가 대중성과 예술성을 같이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② 게펜과 워너에서의 작품들은 월드 뮤직에 가깝고 브라질, 라틴 음악과의 접목을 통하여 재즈의 확장성과 다양성을 증명하였습니다.
③ 2000년대 이후 메스니는 자신만의 독특한 실험과 콜라보 등을 통하여 또 다른 메스니로 나아갑니다.
④ 처음 접하는 분들은 게펜 시절의 작품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점차 ECM으로 눈을 돌려 보세요.
⑤ 메스니의 솔로 작품도 좋습니다만 팻 메스니 그룹(PMG)의 작품을 꾸준히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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