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하극상 이야기
‘下剋上(하극상)’. 계급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 예의나 규율을 무시하고 윗사람을 꺾고 오름.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야구에서 이 단어가 왜 나오는지 의문을 품으시는 분들도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올해 닛폰시리즈 6차전에서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시리즈 역전을 만들어내 26년 만에 일본의 정상에 오른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행보가 하극상과 같았습니다. 3위로 진출한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작년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한신을 상대로 고시엔에서 2연승을 하며 파이널 스테이지로 향했고 요미우리를 상대로도 4승 3패(2패이지만 요미우리의 리그 우승 어드밴티지로 1패로 시작)로 7년 만에 닛폰시리즈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닛폰시리즈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2패로 시리즈를 시작했지만 이후 4연승을 질주하며 26년 만에 왕좌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요코하마는 센트럴리그에서 약체로 손꼽히는 팀 중 하나입니다. 올 시즌 시즌 초 시작이 좋지 않았던 요코하마는 시즌 막바지까지 3위 싸움을 벌였고 2 게임차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낸 우승, 시즌 승률. 0507을 기록하며 역대 최저 승률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야구에서 ‘하극상’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인 2018년 여름, 고시엔 출장은 커녕 10년 연속으로 지역예선 1차전에서 탈락했던 학교가 만들어냈던 ‘일본 제일의 하극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어쩌면 하극상은 야구를 위해 존재하는 단어일지도 모릅니다. 하극상 야구소년들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2018년 일본에는 약 3900개의 고교야구팀이 있었습니다. 약 3900여 개교 중 고시엔으로 향할 수 있는 것은 단 49개교. 이는 언제 봐도 잔인한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잔인한 수치 안에서 고교야구팀들은 매해 기록에 따라 ‘랭크’가 매겨집니다. 이러한 랭크는 각각 A급, B급, C급, D급은로 나누어지는데요. 우선 A급의 경우 흔히 ‘왕자’라 불리는 학교들을 일컸습니다. 매해 고시엔에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저력을 가진 학교이며 전국 수준의 강팀이라 불리는 학교들이 이에 속합니다. 오사카 토인, 히로시마 코료, 센다이 이쿠에이 등이 A급에 속합니다. 다음은 B급입니다. B급의 경우 지역 예선 4강까지는 꾸준히 올라가는 학교들이 해당됩니다. A급 학교를 이기고 고시엔에 갈 수 있는 저력을 갖췄지만 A급에 비해서 조금은 아쉬운 학교들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어서 C급은 지역예선 8강에서 16강 이내에 드는 학교들입니다. 어느 정도 속한 지역에서 명세가 있는 학교이지만 고시엔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학교들이 이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하위랭크인 D급입니다. D급은 위의 A, B, C 랭크의 학교들을 제외한 모든 학교입니다. 매해 1,2차전에서 패퇴하고 고시엔과는 거리가 상당한 학교들. 야속한 고교야구의 토너먼트제 아래에 여름에 단 1경기를 끝으로 퇴장하는 학교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D급 학교가 고시엔에 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최근 5년간 고시엔에 출장한 49개의 학교 중 D급 학교는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말 그대로 그들에게 고시엔은 그저 ‘꿈의 무대’입니다.
미에 현에 위치한 하쿠산 고교도 이러한 D급 고교 중 하나였습니다. 하쿠산고교가 위치한 하쿠산쵸는 주민이 1만 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미에현 현청 소재지인 츠로부터 JR을 환승해 1시간을 가고 하루에 8번밖에 운행하지 않는, 두 시간에 한 번 있는 열차를 타고 역에서 하차해 도보로 10분을 걸어가야만 있는 하쿠산고였기에 많은 학생들이 하쿠산에 가길 꺼려했습니다. 여기에 하쿠산고로 가는 학생들 중 흔히 말하는 ‘불량학생’들의 비율이 많았고 미에 현 내 공립고교 편차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할 만큼 상황이 어려운 학교였습니다.
야구부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았는데요, 아즈마 타쿠지 감독이 하쿠산 고교로 전임해 온 2013년, 야구부는 5명이 전부였고 제대로 된 시설도, 장비도 없었습니다. 부임 이후 첫해였던 2014년, 부원 부족으로 타 학교와 연합팀을 꾸려 예선에 나갔지만 1차전 패퇴에 그쳤습니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8년 연속 지역예선 1차전 패퇴. 그러던 2015년, 한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미에현 최고 야구명문교이자 미에현에서 A급 학교였던 마츠자카상고에서 기존의 미에현 내에서의 스카웃이 아닌 전국 단위의 스카웃을 실시하며 미에현 내에 있던 중학 선수들이 타 지역 선수들에 밀려 마츠자카 상고로 진학하지 못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이때부터 아즈마 감독은 본격적으로 선수들의 스카웃에 나섰습니다. 이때부터 하쿠산 고교 측도 야구부에 지원을 해주기 시작했고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극적인 변화는 바로 나타나지 않았고 2016년에도 1차전에서 패퇴하며 10년 연속 여름 1차전 패퇴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 추계대회 지구 예선에서 3승 2패로 예선을 통과하며 미에 현 대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미에현 추계대회에서 1차전을 10-3으로 이기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지만 2차전에서 이나베종합에 6-1로 패하며 좋은 흐름을 이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바람이 곧 엄청난 돌풍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17년 춘계 대회 지역 예선을 2승 1패로 통과하며 개교 이래 최초로 추계-춘계 미에현 대회에 연속으로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춘계와 마찬가지로 2차전에서 패하며 여름을 기약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지역 대회 2차전 패퇴였지만 이후에 불어온 바람은 전혀 달랐습니다. 10년 연속 1차전 패퇴란 불명예를 씻어내기 위해 준비한 여름, 하쿠산은 욧카이니치니시고를 상대로 11년 만에 지역 예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후 2차전에서 고베고를 상대로 8-0 승리를 거두며 미에현을 놀라게 했습니다. 3차전에선 고시엔 3회 출전의 코모노고를 만나 6-3으로 아쉽게 패배했지만 많은 이들이 달라진 하쿠산을 보고 놀라움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이어진 추계대회 지구 예선을 4승 1패로 돌파하며 파란을 이어갔고 미에현 추계대회에서도 3차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이제 그들의 시선은 더 이상 1,2,3차전 돌파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저 꿈으로만 보였던 무대가 눈앞에 조그맣게나마 그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맞이한 2018년, 춘계 대회 지역 예선을 2승 무패로 돌파, 다시 3차전까지 올라가며 현 베스트 16에 올랐습니다. 어쩌면 3차전에서 계속 패퇴한 것이 걱정이 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하쿠산은 ‘하극상’이라는 일념 하나에 모든 것을 여름에 부딪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2018년 여름, 1차전에서 욧카이니시고를 10대 3으로, 2차전에서 우에노고를 11대 3으로 꺾으며 여유롭게 3차전에 올랐습니다. 마의 3차전, 지난 추계 대회 3차전의 리벤지 매치인 코모노고와의 경기에서 4-3 역전승을 이루어내며 마침내 3차전의 벽을 넘었고 개교 이래 두 번째 지역 예선 8강에 올랐습니다. 8강에서 아카츠키고를 다시 4-3으로 꺾고 마침내 첫 4강에 다다랐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쿠산의 ‘하극상’에 경악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지역 내에서 가장 문제라 여겨졌던 학교가, 보잘것없다 생각했던 학교가 강자들을 차례로 이기고 4강에 올랐기에 이는 놀라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4강에서 만난 학교는 고시엔 11회 출전의 카이세이고, 그런 카이세이고를 상대로 선취점을 내고 9회 말까지 6-3으로 리드했고 2점을 내주긴 했지만 동점을 허용하지 않으며 마침내 사상 첫 결승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올라간 결승, 상대는 A급 고교이자 미에 현의 왕자 마츠자카상고였습니다.
이때 미에현뿐만 아닌 전래 없는 A급 학교와 D급 학교의 결승에 많은 관심이 쏠렸고 잃을 것이 없던 콘크리트 출신 선수들은 비옥한 땅에서 자란 왕자에게 덤볐습니다. 1회 초에 2점을 선취했고 5회 초에 대거 6 득점을 하며 꿈의 무대에 한 발짝 다가갔습니다. 8-2로 맞이한 9회 말, 경기가 종료되었고 59년 만에 개교 이래 최초 고시엔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하쿠산 고교의 스탠드에는 ‘日本一の下剋上(일본 제일의 하극상)’이 적힌 티셔츠가 가득했고 티셔츠에 적힌 문구 그대로 일본 제일의 하극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일본 제일의 하극상으로 밟은 꿈의 무대, 하쿠산은 부전승으로 올라간 2차전에서 아이쿄다이메이댄을 상대로 10-0으로 완패하며 아쉽게 패퇴했습니다. 하지만 그 완패 속에서도 하극상은 빛났습니다. 마을 주민 1만 명이 버스를 대절해 150km가 넘는 거리에 응원을 왔고 이 날 고시엔의 1루측 스탠드는 ‘일본제일의 하극상’ 티셔츠와 초록색 물결로 가득 찼습니다. ”D급 학교는 못해 “, ”D급 학교는 무리야 “라는 편견을 깨고 일본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하극상을 기록한 두려울 것 없었던 여름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이야기는 tbs 드라마 [하극상 야구소년]으로 제작되어 다시 한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왓챠에서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오늘의 고시엔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