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여름, 열도를 울린 에이스의 눈물
2009년, 인플루엔자(신종플루)의 발생으로 세계 각지에 많은 피해가 잇따랐습니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고 대회 취소까진 아니었지만 고시엔에도 적지 않은 피해가 있었는데요. 감염 방지를 위해서 경기장에 오는 이들은 방역 조치를 해야만 했고 팀의 훈련도 분리되거나 격리되어 진행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지도자와 선수들이 감염되는 경우 팀으로부터 격리되어 경기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신종플루 때의 경험 때문인지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대회 취소 이후 2020년 고시엔 친선 경기에 이어 2021년 성공적으로 103회 대회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지나간 여름은 돌아오지 못하기에 감염병에 여름을 빼앗긴 선수들의 마음은 말로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2009년 여름 수많은 선수들이 여름을 빼앗겼고 그중에서는 고시엔에 나온 이후에 감염, 격리되어 팀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동료들은 패배가 확정적인 상황에도 끝까지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함께 싸우지 못하는 동료들의 몫까지, 그리고 돌아가신 감독님의 가르침대로 말이죠.
2009년 시마네 현의 릿쇼다이 쇼난 고교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고시엔으로 향하는 티켓을 손에 쥐었습니다. 어느 학교이든 고시엔에 나가는 것은 영광이고 뜻깊은 일이지만 릿쇼다이 쇼난의 경우 이 정도가 더 했습니다. 2009년 당시 3학년 선수들은 2007년 9월, 41세의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급사한 다나카 켄지 전 감독의 마지막 제자들이었기에 “감독님을 고시엔에 “란 생각으로 감독님의 영정과 함께했고 결국 고시엔에 감독님의 영정을 모셔가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대회 직전 인플루엔자가 일본 전역을 강타했고 시마네현도 이를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선수단은 한정된 공간에서 연습을 해야 했고 인플루엔자의 위협과 불안 속에 선수단의 컨디션도 좋게 유지되지 못했습니다.
인플루엔자의 위협을 뚫고 다나카 감독님의 영정을 모시고 온 사상 첫 고시엔에서의 첫 번째 경기에서 야마구치 대표인 카료 고교를 만난 릿쇼다이 쇼난은 9회까지 0의 균형을 유지하는 투수전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9회 초 1사 1,2루라는 핀치를 맞았습니다. 에이스 사키타의 공이 금속배트의 쾌음과 함께 좌중간으로 뻗어나갔고 그대로 실점으로 이어지는 상황이었으나 좌익수 고토가 이를 믿을 수 없는 다이빙 캐치로 막아내며 실점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후속 타자를 1루수 땅볼 아웃으로 잡아내며 릿쇼다이 쇼난은 9회까지 실점하지 않고 9회 말 공격으로 향했습니다. 9회 말 1 아웃 상황, 방금 전 수비에서 팀을 구해낸 고토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1 볼에서 가운데로 몰린 직구를 놓치지 않았고 타구는 고시엔의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끝내기 홈런이 되었습니다. 극적인 마무리로 릿쇼다이 쇼난은 고시엔에서의 첫 승을 경험했습니다.
전국대회 첫 출전, 첫 승이라는 기념비적인 승리 이후 행복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첫 승리 이후 쇼난의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인데요, 벤치 18인 중 이치, 이지마, 나카오 3인의 선수와 연습 보조로 고시엔에서 함께한 2명 등 5명이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 팀을 떠났습니다. 이에 더해 팀의 3번 타자이자 유격수인 야마와키도 발열을 호소해 릿쇼다이 쇼난은 14명의 멤버로 2차전에 임해야만 했습니다. 여기에 인플루엔자로 인해 경기에 나서지 못한 4명 중 두 명(이치, 나카오)이 투수였기에 릿쇼다이 쇼난의 마운드는 에이스 사키타가 홀로 짊어져야 했고, 유격수가 빠진 자리에 본래 3루수가 경험이 전무한 유격수 자리에 들어갔고 3루수에는 지역예선 미출전의 선수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경기 전 쇼난의 주장인 하야시타 마오는 “여기서 끝나면 반드시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드시 이겨서 다시 한번 다 같이 야구를 하고 싶다.”란 말로 팀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16강에서 만난 상대는 군마 현 대표 도쿄농업대 제2고교, 선취점을 내주고 4회에 추가점을 내주며 경기 내내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주전 야수 두 명이 빠진 이유에서인지 수비 위치와 타순에 대폭적인 변화가 있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듯했습니다. 그러나 6회 초 2사 2루, 에이스 사키타가 중전 안타로 팀의 첫 득점을 만들어내며 릿쇼다이 쇼난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사키타는 이후 6,7회 수비에서 2-1의 점수를 유지했고 8회 초 타석에서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동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타선을 틀어막으며 경기는 동점인 상황에서 9회 초로 이어졌고 이 공격에서 2점을 뽑아내며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사키타는 에이스의 의지를, 투혼을 선보이며 경기를 마무리했고 사상 첫 출전의 고시엔에서 8강으로 향하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그러나, 14명이란 소수의 인원에서 한 명의 감염자가 더 발생했습니다. 바로 주장 하야시타가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것인데요, 팀을 이탈하며 하야시타는 에이스 사키타에게 “주장이 빠지게 되어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성지를 뒤로 했습니다. 스타팅 9인을 제외하고 가용 가능한 멤버는 4명. 8강에 안착한 팀들 가운데에 가장 열악한 조건이었습니다. 더군다나 8강전 상대는 니가타의 강호, 니혼분리고교. 힘든 상황이었지만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2회 말 선취점을 내주었지만 4회 초에 두 점을 내며 역전에 성공했고 4회 말에 1점을 내주며 경기는 다시 균형을 찾았습니다. 그러던 중 6회 초, 에이스 사키타의 솔로 홈런으로 다시 역전에 성공해 승리를 넘보았지만 쇼난의 힘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초전부터 모든 경기를 책임진 에이스 사키타의 힘이 다 하면서 역전 후 수비에서 3점을 내주며 역전을 허용했고 7회 말에 한 점, 8회 말에 5점을 내주며 사실상 승부의 추가 기울었습니다. 마운드에서 패배를 직감한 사키타가 눈물을 흘리며 공을 뿌렸고 어렵게 8번째 이닝을 도합 165구의 역투로 마무리한 후 더그아웃에서 눈물과 함께 마지막 공격을 응원한 장면은 열도의 야구팬들을 울렸고 이는 고시엔 106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그렇게 ‘투혼’을 펼친 릿쇼다이 쇼난의 여름은 끝났습니다. 다나카 켄지 전 감독이 약체였던 팀을 처음부터 가꾸고 수제로 그라운드 정비까지 하며 키워낸 야구소년들의 야구는 감염병 앞에서 아쉽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소년들의 야구는 분명 천국에 계신 은사께 반드시 닿았을 것입니다. 핀치 상황마다 에이스 사키타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이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사키타는 “ 핀치 때마다 다나카 선생님의 힘을 빌리고 싶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라 답하며 함께하지 못했지만 함께였던 감독님을 언급했습니다. 32강전 9회 초, 16강전 7회 말, 분명 다나카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싸웠을 것입니다. 인플루엔자로 함께 싸우지 못한 동료들도 분명 함께였을 것입니다. 2009년 여름, 고시엔 구장에선 보이지 않지만 함께 싸우는 이들의 투혼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고시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