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4살 후반 즈음 "이거 뭐야?" "요게 뭐야?"라며 글자를 가리키며 엄청난 질문을 폭포수 쏟듯 뿜어냈지만 확장을 시켜 줄 여력이 없었다.(육아 우울증)
2호는 유튜브를 하도 많이 봐서-유튜브를 보라고 손에 쥐어주면 그렇게도 알파벳 영상만 보는 게 신기하긴 했다-혼자서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를 4살 전 거의 외워 보드판에 적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지만, 그것 또한 확장시켜 줄 여력이 못되었다.
(역시 육아 우울증)
그렇게 두 아이의 호기심은 희미하게 사라지고 1호가 학교 입학할 시기가 되었는데,
코로나 시기라 기관에 잘 못 가니 못 배우기도 했고, 엄마인 내가 한글공부를 시켜 볼 마음을 못 냈기도 했다.
게으르고 의욕 없는 엄마의 핑계 같아서 민망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본 적이 없어서 아이들 한글을 어떻게 뗐냐는 엄마들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대충은 읽었던 것 같은데 받침 글자는 못 읽는 것이 더 많았고 쓰는 것은 아예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즈음 내가 해 준 노력은 자기 전 아이들을 양 옆에 끼고 그림책 한 권을 겨우 읽어주는 정도의 아주 소박하고 작은, 최소한의 부모 노릇이었다.
학교에 입학하니 1호가 불만을 호소했다.
우리 집은 주말에만 30분씩 스마트 폰 게임이 가능한 규칙이 있는데, 다른 친구들은 평일에도 게임을 한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책을 스스로 한 권씩 읽을 때마다 10분씩 게임을 하게 해 준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때부터 1호는 집에 있는 그림책들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우리 집 서재에 책이 많긴 했지만 누군가 물려준 책, 분리수거할 때 가져온 책, 스크래치 반품 제품으로 90프로 할인된 가격에 구매했던 전집등이 있었다.
1호는 서재에 그림책을 다 읽어 치우기 시작했다.
오직 평일에도 게임을 하기 위해서
책 9권을 읽고서 1시간 30분씩 유튜브와 게임을 하기 시작하던 어느 날,
뭔가 대단히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껴서 진지하게 상의하려던 찰나,
아이는 그때, 책을 읽는 만큼 게임을 하지는 않을 테니 책을 계속 읽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의 부탁으로 나는, 도서관에 그림책과 동화책을 빌리러 갔다.
*2년 전에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였습니다.
책이 게임을 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되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고
오히려 빨리 게임을 하고 싶어서 책을 대충 읽는 습관이 길러진다고 책 육아 하는 지인이 충고를 해 주셨거든요.
다행히 아이는 그 시기가 그리 길지 않았고, 감사하게도 그 사이에 책에 흥미를 느끼고 빠지게 되었습니다.
글밥이 많은 책으로 점프한 계기도 우연이었다.
교회에서 여름캠프 때 천로역정 책을 읽고 오라고 했다. 여태 읽은 책은 저학년 문고와 그림책이 전부였는데, 어린이를 위한 천로역정이라도 글밥이 많아 걱정이 되었다. 참여하는데 의의를 두자며 매일밤 열심히 한 꼭지씩 읽어주었더니, 어느 날아들은 뒷부분이 궁금하다며 혼자서 더듬더듬 책을 읽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니야 연대기, 프리데인 연대기, 해리포터 시리즈(지인의 조언으로 4권부터는 중지시켰다)를 1학년 겨울방학즈음 다 읽었다.
조금은 단순한 스토리의 그림책이나 저학년 문고를 읽을 때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긴 호흡의 기승전결이 있는 판타지 문학 호흡에 완전히 푹 빠져버린 것이었다.
이럴 때 팁) 서사가 긴 호흡의 장편 소설은 엄마가 앞부분만 조금 읽어주자.(정말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보자. 이 정도 노력 없이 아이들을 독서광으로 만들기는 힘들다.)
앞부분은 인물의 서술과 묘사, 배경 설명 등, 설명들이 많다.(그러니 재미없을 수밖에)하지만, 그 부분만 넘기면 본격적으로 사건이 전개되며 재미는 저절로 따라온다. 실제로 나니아 연대기도 이런 식으로 읽었다.
거기에 더 해 막 재미있어지는 순간,
다음에 읽어준다고 책을 덮어보자.
(심술쟁이 엄마라고 원성을 하며 스스로 찾아 읽기 시작했다.)
지금 3학년인 1호는 그림책, 동화책, 학습만화, 청소년 소설, 역사, 청소년 삼국지, 자연과학, 사회과학, 고전과 명작, 문학비문학을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독서를 하고 있다.
게임을 하기 위한 그림책을 시작으로 아들의 흥미를 끈 판타지를 시발점으로,독서 근육이 붙어 이제는 재미없어하던 비문학책도 끊이지 않는 지적 호기심으로 열심을 내고 있다.
우리 아이에게 통했던 독서비결은 1. 동기부여(보상: 게임 말고 다른 게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2. 심심한 시간의 활용(장난감의 결핍, 스마트 폰 사용의 제한) 3. 흥미로운 독서의 물꼬(판타지 소설) 그리고 4. 흥미 도서를 끊임없이 빌려준 엄마(나)의 최소한의 노고인듯하다.
아이가 도서관에서 대출증을 만들어 첫 대출을 한 2021년 8월 26일 이후
(아들과 나는 대출증이 따로 있긴 하지만 섞어서 빌리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대략 천권의 책을 대출하였다.
늘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독서라는 행위도
어쩌면, 이야기 중독인가 보다.
우리 집 1호는 내 이불킥 썰(내 어릴 적 민망한 기억들과 추억) 듣는 것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