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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Nov 02. 2021

이중인격자

(법륜스님의 '야단법석')


“누난 참 이상한 사람 같아”     

남동생은 저 말을 마지막으로 나와 6개월간 말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아, 그 키 크고 착한 아이?”라고 불렸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도 인기투표로 이루어지는 반장선거에 종종 화요일이나 목요일 반장을 했었고

(인기투표 순위대로 월요일-토요일 반장 총 6명 뽑았다)

중학생이 되었을 땐 반 편성 고사를 잘 봤는지 1학년 되자마자 선생님께서 1등부터 5등까지 이름을 칠판에 쓰시고 그중에서 반장 부반장을 투표하라고 하는 바람에 부반장이 되었다.

그즈음  “아, 그 공부 잘하고 착한 아이?” 불린 것이다.



왜 언제부터 이상한 사람이 되었을까?

남들은 착한 아이라고 불렀던 내가 왜 가족인 동생에게 저런 말을 들어야 했을까?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면 동생에게 문제가 있기에 나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너무 잘 안다. 

나의 완벽에 가까운 이중적인 성격엔 아주 문제가  많기에 지금부터 구구절절 그 이야기를 펼쳐보려 한다.





가부장적이고 다혈질인 아빠랑 유난히 부딪히는 둘째 딸인 나는 그런 아빠를 너무 닮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아빠는 집 밖에서도 그런 성향을 유지 중인데 아빠의 그런 모습이 너무 싫은 마음이 투영된 것인지 나는 완벽에 가깝게 밖에서는 가면을 쓰며 살았다.


집 현관문을 들어오면 나는 변신한다.

밖에서는 착한 아이가 집에서 만큼은 아빠를 닮은 모습으로 발현된다.


어떨 땐 이러는나도 궁금했다.

밖에서는 착한 사람 증후군에 걸린 사람처럼 온갖 친절로 포장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긴장이 풀린 탓인지 연극이 끝난 탓인지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변한 내 모습이....


언니와 동생에겐 온갖 잔소리로 간섭했고 엄마에겐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내 뱉었고 그렇게 싫어하던 아빠의 모습을 유일하게 닮은 자식인 내가 아빠 잔소리가 시작되면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못된 딸이었다.





동생이 초등학생이던 어느 비 오는 날 이었다.

학원을 가야 하는데 자기 우산이 망가졌다며 우산을 빌려 달라했다.

날이 선 말투로 잘 쓰고 가져 오라며 줬는데 그날 동생은 학원을 다녀왔을 때 다른 우산을 쓰고 돌아왔다.

비슷하기라도 하면 이해 되겠는데 완전 다른 무늬 우산을 쓰고 온 동생에게 언성 높이며 물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가져간 우산 모양을 이리 헛갈릴 수 있냐며 핀잔을 주었더니 자기도 안다고 했다.

학원 마치고 집으로 오려는데 우산이 안 보이더란다.

자기 우산도 어차피 누가 가져갔으니 자기도 거기 있는 우산 하나를 가져오면 되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도 왜 남의 것을 가져왔냐고 그건 도둑질이라고 했더니


 “누나가 무서워서...”


가 동생의 대답이었다.

그냥 집에 오면 누나한테 혼날 것이 무서워 남의 것이라도 가져왔다고 대답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동생은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대신 훔쳐올 만큼 나의 잔소리와 집요함이 두려웠던 것이다.

내가 동생에게 그런 존재였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다.

  




밖에서는 완벽한 착한 아이를 연기하고 집에서는 온갖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던 나는, 가장 소중한 내 가족들에게 가족이라는 이유로 예의를 갖추지 않고 대했다. 


나의 가족에게 나는 '남보다 더 못한 남' 같은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어느날 부터인가 나는 점점 달라지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밖에서와 집에서의 성격 차이가 너무 큰 것이었다. 친구들에게도 더 이상 착한 친구만이 아닌 나의 생각과 의견을 이야기하는 친구가 되기로 했다.


나는 그 당시 나의 본 모습을 남에게 감추려 더 잘 웃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성격이 좋은 ‘척’을 하는 그런 아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뭘 그리도 꼭꼭 숨기고 싶었던 것일까? 본모습을 남이 알게 되면 나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그랬던 것일까?


그런 ‘나’라는 사람은 집에 와서는 정작 남이 아닌 가족 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살았던 것이다.


조금씩 나는 노력했다.

가족을 대할 때 의식적으로 남을 대하듯 친절해지려고 노력하자 가족과의 관계도 점점 좋아졌다.

안팎의 나의 행동 간격이 점점 좁아지면서 집에서 뿐 아니라 밖에서도 착한 아이로 지낼 때 보다 더 밝은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고 더 당당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럼 이제 나는 더 이상 이중적인 사람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그건 아니었다. 아무리 둘의 간격을 좁혀도 여전히 나는 남에게 친절하고 가족에게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언니와 동생은 나를 ‘이중인격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말이 예전에는 내가 진심으로 싫어서 비아냥이 섞인 말이었다면 이제는 게 불러주는 친밀감의 단어 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잘한다며 누나의 사교성을 배우고 싶다는 동생의 칭찬인 듯 칭찬 아닌 말에도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  수 있다.


성인이 되고 언니 동생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우리는 일 년에 겨우 몇 번  만나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지만 우리의 남매 애(愛)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돈독해졌다.




나의 이중적인 성격은 남편과 연애시절 커밍아웃을 해야 할 날이 있었다.

우리는 어른들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 다른 성격에 호감을 느껴 교제하게 되었다.

장거리 연애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몇 시간을 겨우 만나곤 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이라 굳이 싸울 일이 없었고 서로 좋은 모습만 보고 헤어지기 바쁜 교제를 하던 중 왠지 나의 이중적인 모습을 말해줘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일명 양심 고백이다.


 ‘괜히 모르고 결혼했다가 나중에 혹시 사기 결혼 당했다고 그러면 어쩌지?’라는 엉뚱한 생각들로 나의 이중성을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남편을 만날 때마다 나의 단점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특히 이중적인 성격 부분은 더 자세히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남편은 짧은 연애기간 동안 만날 때마다 스스로의 단점을 이야기하는 여자가 참 어이 없었을텐데, 그 당시 남편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인지 신기하고 더 호감이 갔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했고 남편과 나는 너무 다른 사람 이라는 것을 더욱더 느낄 수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차이는 남에겐 친절하고 가족에겐 편히 대하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가족에게 가장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편이 시부모님과 누나들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남을 대하듯 예의가 깍듯하다.


한 번은 결혼 초에 어머님 댁에 놀러 갔는데 우리에게 마시라고 큰 요구르트 한 줄을 주셨다.

뚜껑을 여는 순간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 있었다.

놀라서 남편에게 손으로 가리키며 먹지 말라 사인을 줬고 남편은 눈치를 알아채고는 식탁에 있던 요구르트를 다 마셔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물었다.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것인지 왜 버리지 않고 다 마셨냐고 물었더니 “유통기한이 많이 지나 여보에겐 탈이 날까 줄 수 없었고 내가 그냥 마셔 버렸어요. 어머니께 말씀드리면 괜히 며느리 앞에서 미안하고 민망해 하실까봐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 같았으면 사위가 있든 말든 이런 걸 아직 냉장고에 두었냐며 엄마에게 따지듯 이야기했을텐데 남편의 성품은 나와는 정 반대였다.


남편은 그렇게 부모님께 대하듯 나에게도 다. 그런 남편 앞에서 내 모난 바닥의 끝을 보일 수 없었다.


가족에게 상처를 줬던 잘못된 행동을 남편에게 하고 싶지 않았고 존중해 주는 것만큼 나도 존중하려 노력했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고 가장 많이 달라져 좋은 점이 '내 딸이 가족들에게 많이 착해졌다'이다.


그렇게 나는 남편을 닮아가고 있었다.





아! 그럼 지금쯤 나는 더 이상 이중적인 사람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그건 또 아니다.

여전히 나는 남의 아이에게는 친절한데 우리 아이에게는 엄격하다.


아,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영원히 고쳐지지 않는 것일까?


표현은 그래도 내 가족과 아이들을 최고 사랑하는 마음은 일등인데 나는 왜 이렇게 이중적으로 살아가는지 참 내 마음을 모르겠다.



‘안 그러도록 노력해야지!

사랑합니다. 우리 가족,

내 남편, 우리 아이들!’         


 

c. 반짝반짝 빛나는 '2호'의 작품 2020.12


<김용운 선생님의 글쓰기 강의에서. 주제: '나에게 상처가 되었던 말'>


 

ㅡㅡ오늘 우연히  법륜스님의 '야단 법석'을 읽고 저의 성격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뭔가 뻥 뚫리는 느낌!



'남이 나를 좋게 바라봐 주기 바라는 나의 욕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그런것 같습니다!


출처:  법륜스님.  야단법석.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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