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서 경북으로 시집을 갔으니, 퇴사를 하고 그저 자연스레 아이를 갖고, 둘째까지 생기다 보니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너무 어리니, 나는 당연히 집에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일을 해봐야겠다고는 생각지도 못한 결심이었다.
일을 할 거면 나름 편히 있었던 시절이나 했었어야지 대뜸 이렇게 최악인 상황에서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왜 들었는지도 의문이었다.
사실 이사를 오면서 첫 집을 샀기에 일단 우리에게 없던 '빚'이라는 무게가 참 무겁긴 했으나 (그러나! 그건 지금 어린아이들을 지금 키우고 있는 내 책임은 아니지~!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아니다! 더 솔직히는, 빚이 1억이나 1억 50이나... 1억 500이나.... 그게 그거지,, 그냥 될 대로 돼라!!!!라는 이런 맘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홀로 생계를 책임지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아이들 간식 값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기도 했다.
(아.. 간식비가 정말 많이 들긴 했다. 내 간식 포함.. 또르르...ㅠ.ㅠ)
또한 온종일 셋이서만 있는 시간들 자체가 서로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의 피폐한 모습이 아이들에게 썩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도 어린이집을 가고, 나도 일을 하고 나서 만나면, 더욱더 애틋함으로 아이들도 내가 반가울 것이고 나도 왠지 아이들에게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지금,
어른 사람과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다.
아니, 아무 어른 사람이라도 누군가를 만나보고 싶었다.
한 동안 장식으로 있었던 컴퓨터를 켰다. 결혼 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어딘가에 있을 텐데...
폴더를 뒤적이며 문서를 찾았다! 추억이 새록새록 (헙.. 나의 흑역사;;;^^)
저 때는 뭐가 그리도 자신 만만 했는지, 지금은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저 이력서로 왕년에 낸 서류면접에 떨어진 적이 없었는데 후훗,
잠시 추억에 잠겨 보자면..
나의 첫 이력서는 십여 년 전 대학교 알바시절로 내려간다.
첫 이력서를 쓴 곳이 영어 전문학원 실장 보조였다.
그 시절엔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곳으로 가져다주는 방식이었다.
그때 쓴 자소서의 내용은 기억은 안 나지만, 자소서를 노란색 A4용지에 써서 핑크색 봉투에 넣어 냈던 걸로 기억을 한다.
결과는 20대 1로 합격!!! (오버 조금 보탰다.. 10명 가까이는 분명 된 걸로 안다)
합격 후 실장님께 여쭤보니, 정말로 많은 이력서 중에 제일 먼저 눈에 쏙 들어와 내가 채용이 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일단 결혼 전 이력서와 자소서는 참고할 게 없었고, 모든 내용을 다시 창작해야 할 수준에 이르렀다.
아이들을 재우고, 긴 긴 밤을 새벽까지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 고를 반복하며, 그렇게 나의 오랜 창작은 끝에 정확히 새벽 4시가 되어 작성이 끝이 났다.
이 지역에서 아는 곳이라고는 우리 동네뿐!이니, 일단 네이버 지도를 켜놓고,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의 구인공고를 체크했다.
전송까지 하고 잠에 들려다가 왠지 지금 전송을 누른다면 나의 새벽 감성에 내일 이불 킥!!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잠시 눈을 붙였고, 아침의 맨 정신으로 다시 이력서와 자소서를 보고(다시 얼마나 보고 또 봤는지 모른다) 수정 후 입사지원서 전송 버튼을 눌... 렀.... 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 메일을 언제 보실까?
두근거리는 맘으로 수신확인 버튼을 새로 고치고 또 새로 고쳤다.
몇 번을 고치고 고쳐서 두둥! 11시쯤 읽으셨다!
두근두근 두근............!
11시 5분쯤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띠리리~~
띠리리~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헛기침을 두어 번 후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윗 사진은 셋이서(1호 2호와 함께).... 이 사진은 2호 태어나기 전 둘이서.. (같은 장소 다른 해에 찰칵!)